[새론새평] 좋은 대학

입력 2021-12-01 10:45:26 수정 2021-12-01 16:12:03

오정일 경북대 행정대학원장

오정일 경북대 행정대학원장
오정일 경북대 행정대학원장

교육부가 전국 대학을 평가해서 27개 대학을 재정 지원 대상에서 탈락시켰다. 돈줄을 끊은 것이다. 이제 국회가 이들 대학을 구제하겠다고 한다. 일종의 패자부활전이다. 이것도 오징어 게임인가.

국정감사에서는 모 의원이 '누적입학포기율'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통계를 발표해서 많은 국립대학을 폄하(貶下)했다. 신입생 모집 과정에서 등록을 포기한 모든 학생 수를 입학 정원으로 나눈 것이 누적입학포기율이라고 한다. 특정 대학이 원하는 학생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는지를 나타내는 통계는 '최초입학포기율'이다. 수험생들이 최대 9개 대학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최초입학포기율은 연세대 42%, 고려대 50%(이상 수시모집), 경북대가 51%다. 미국에도 유사한 통계가 있는데, 하버드대 18%, 코넬대가 40%다. 두 사례는 대학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대학 입시가 시작됐다. 수험생들은 많은 대학을 선택할 수 있다. 선택 폭이 큰 만큼 고민도 깊을 것이다. 선택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다. 정보가 없으면 옳은 선택을 할 수 없다. 개별 대학이 홈페이지에 각종 지표를 게시한다. 수험생들은 여기서 기본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많은 대학의 다양한 지표를 비교해야 한다. 또한 개별 지표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대체로 대학 홈페이지에는 양적(量的) 지표가 게시되고 질적(質的) 측면을 나타내는 지표는 찾기 어렵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가 대학 순위를 매겨서 매년 발표한다. 물론, 이들 신문사에 대학을 평가할 권한은 없다. 두 신문사가 신뢰성이 없는 순위를 발표함에도 어느새 수험생들이 이것을 믿게 되었다. 두 신문사의 평가 항목은 매우 다르다. 중앙일보 평가는 교수 연구 31%, 학생취업률이 12%인 반면, 조선일보 평가는 학계 평가 30%, 졸업생 평판도가 20%다. 이러한 이유로 중앙일보 평가에서는 공대 중심의 작은 대학이, 조선일보 평가의 경우 서울 유명 사립대학이 높은 순위에 오른다. 신문사 대학 평가는 선입견을 공고(鞏固)하게 할 뿐, 수험생들의 선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험생들이 가장 신뢰하는 정보는 입시학원이 만든 배치표다. 배치표는 모든 대학, 학과 합격선을 내림차순으로 배열한 것이다. 입시학원은 '빅 브라더'(Big Brother)다. 그 많은 대학, 학과 합격선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입시학원은 수능점수로 대학을 평가한다. 합격선은 수험생들의 선호를 나타낸다. 특정 대학에 입학하려는 수험생이 많으면 합격선은 올라간다. 수험생들의 선호를 합격선보다 잘 나타내는 지표는 없다. 입시학원 배치표가 맞는다면 합격선이 높은 대학이 '좋은' 대학이다. 수능점수가 높은 학생들이 입학했다가 졸업하는 대학이 좋은 대학이 된다. 그렇다면 수험생들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수능점수에 따라 대학이 할당되니 실질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좋은 대학'은 실체가 없는 말이다. 대다수 대학의 시설과 교수진은 어느 정도 평준화됐다. 어느 대학에 입학하든 특별한 무언가가 없다. 이른바 좋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생각도 틀렸다. 그들은 각자 출세한 후 필요에 의해 뭉친 것이다. 이른바 좋은 대학에는 수능점수가 높은 학생들이 많다. 그들이 공부를 잘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부 능력은 직업을 갖고 독립적으로 생활을 해나가는 능력과 관련성이 낮다. 우리나라 5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중요하게 보는 항목은 전공 47%, 근무 경험이 16%다. 학교 이름과 학점은 각각 5%, 2%에 불과하다.

대학 입학을 원하는 학생은 누구나 진학이 가능한 세상이 됐다. 특정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평생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시절은 지나갔다. 절대적으로 좋은 대학은 없지만 수험생 각자에게 '맞는' 대학은 많다. 무엇이 자신에게 맞는 대학인가. 일정 수준의 교양을 쌓고, 자신이 원하는 직업에서 요구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맞는 대학이다. 사실은 자신에게 맞는 대학이 좋은 대학이다. 모든 수험생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