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시(詩), 치유제를 넘어 영양제

입력 2021-11-18 10:22:41

내 마음이 지옥일 때/ 이명수 지음/ 해냄출판사 펴냄/ 2021년

파란 하늘과 노란 은행잎. 김남이 제공
파란 하늘과 노란 은행잎. 김남이 제공

'아득한 세상을 지나는 이에게 심리기획자 이명수가 전하는 탈출 지도', 책 표지의 제목 아래 적힌 부언이다. '심리기획자'라는 용어가 생소하다. 마음의 성장과 치유를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을 기획하는 저자 자신이 붙인 직업명이라 한다. 지은이 옆에 '영감자 정혜신'이라 적힌 것도 낯설다. 저자는 배우자인 정혜신을 도반이자 스승이라고 밝히며, 정신과 관련 일을 하는 아내의 치유적 경험과 내공을 그의 식대로 흡수해서 풀었으므로 공저자가 아니고 영감자라는 것이다.

이들 부부는 여러 형태의 국가폭력이나 사회적 참사 등의 피해자들을 위한 심리치유 작업을 기획하고 힘을 보탰다. 그러는 중에 개인의 일상에서도 마음속 지옥이 많음을 목격하고, 마음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이드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크게 16개의 항목으로 제시된 처방전마다 서두에 저자의 짧은 에세이가 있고, 4~6편의 시가 간단한 감상과 함께 인용돼 있다. 총 82편의 시, 저자는 이 책에서 쓰일 마음 지옥의 치유제로 '시'를 택한 것이다.

그 까닭을 프롤로그에 잘 풀어놓았는데, "공감과 통찰과 눈물과 아름다움이 있는 치유제가 세상에 또 있을 리 없다"(11쪽)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예컨대, 1장 '징징거려도 괜찮다'에서 저자는 "내 마음이 지옥일 만큼 상처를 입었을 때 감정토로는 고름을 빼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토로만 해도 감정의 압이 떨어진다. …. 징징거릴 수 있으면 결정적 지옥은 늘 대기상태로만 있다"(20, 21쪽)고 처방하면서, 정현종 시인의 '비스듬히'라는 치유제를 권한다. 시인의 깊은 통찰이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시다.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삶의 무게로 힘들거나 허덕이는 상황은 아예 모르는 것처럼 잘나고 근사한 모습만 보이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상의 인간이 겪는 고락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걸 우리는 안다. 모든 생명이 징징거린다고, 나무도 공기에 비스듬히 기댄다고 읊은 이 시는 우리 마음을 얼마나 편안하게 토닥여 주는가. 저자는 마음이 지옥인 거대한 난파선에서 사람들이 시의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하는 광경을 상상한다고 한다. 꼭 지옥까지 간 마음이 아니어도 삐걱대는 배에서 시는 최소한 구명조끼가 되어줄 것이다.

울적하거나 심신이 지쳐있을 때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자신을 달래는 것처럼, 시를 읽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시는 노래보다 훨씬 천천히 사람들 마음에 스밀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듬더듬 주춤주춤 닿기 때문에 더 깊게 스미고 더 오래 곁에 머물 것이다. 시 읽기의 입구를 이 책에서 찾아도 좋을 것이다.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며 심리치유 전문가의 조언을 새겨볼 수도 있고, 울림이 큰 시들을 만나 마음의 건강을 다질 수도 있으니.

김남이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