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주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16년 장편소설 '환상통'으로 데뷔한 이희주 작가가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했던 '성소년'이 단행본으로 묶여 출간됐다. 문학동네대학소설상 수상작인 '환상통'의 속편 시리즈처럼 '성소년' 역시 아이돌이 구심점으로 등장한다.
소설책을 집어들면 제목과 띠지의 글, 그리고 표지 그림이 하나의 의미 단위로 눈에 들어온다. 세 가지를 조합하면 소설의 시작과 전개를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다.
먼저 '성소년'이라는 제목은 '성스러운 소년'이란 뜻으로 일본 작가 쿠라하시 유미코의 1965년 작품 '성소녀'에서 따왔다. '聖少年'으로 추앙받는 아이돌이 납치됐거나, 아이돌이 납치돼 '聖少年'이 됐거나. (아이돌이 교주가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었다 해도 나름 흥미로운 전개를 펼쳤을 작가의 능력이 보인다)
띠지에는 '오늘, 내 최애를 납치했다'고 당당히 써뒀다. 최애(最愛), 아이돌이 납치된 상황이라는 건 알고 들어간다. 표지 그림이 마지막 암시다. 집 한 채가 달랑 있는데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이 아니다. 종합하면 아이돌이 납치돼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집에 갇혀서 '성소년' 대접을 받는 일만 남았다.

이제 소설로 들어가자. 소설의 시작은 2021년이다. 어떤 사건이 지나간 뒤 다시 모인 이들의 회합이다. 이들이 숭배하듯 떠받쳐온 누군가를 떠올리고 기억하려는 모임이다. 회합을 이끄는 이가 과거를 복기하며 말을 이어간다. 그의 말에서 사건 이후 20년여의 시간이 지났음을 안다. 구체적인 사건 개요가 뭔지 독자가 궁금해 할 때쯤이다. 작가는 재빨리 1990년대 후반의 어느 날로 돌아가 소설을 본격적으로 풀어간다.
10대 남자 아이돌, 요셉이 외딴 산장에 갇혀 있다. 북한과 가까운 강원도의 어느 산장이다. 도심과는 거리가 멀어 휴대전화도 잘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근 주민들 모두가 궁금해하는 고품격 산장이다. 범인들의 이름은 초장에 공개된다. 안나, 나미, 미희, 희애. 이름이 끝말 잇기처럼 연결된다. 저마다 요셉과 직·간접적인 인연이 있는 듯하다. 시간적 배경은 1990년대 후반이다. 당대를 호령했던 남자 아이돌들이 급히 지나간다. H.O.T, G.O.D, 신화의 한 멤버를 떠올려 억지로 소설에 집어넣어 본다.
납치 기간이 무려 한 달이다. 정신이 나간 이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과거를 세세히 나열한다. 조연급 인물이 살아온 이력을 설명하는 데도 충실하다. 심리 묘사에 집중하겠다는 알림이다. 왜 이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지 합리적 추론을 할 수 있는 근거, 즉 밑밥을 충분히 까는 것이다.

추리소설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문장으로 가득하다. 전반적으로 유려한 묘사다. 심지어 시적인 표현도 심심찮게 눈에 머문다. 추리물의 특징이라는 '현장에서 직접 지켜본 듯한' 느낌은 아니다. 상상력을 극대화해 쓴 흔적이다. 물론 작가의 노림수로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짧게, 깍뚝썰기처럼 처리된 문장이었다면 독자는 급류를 탄 듯 사건 속으로 휩쓸렸으리라 짐작한다.
네 명의 여자는 순탄하게 요셉을 가둬두지 못한다. 독점욕이 생길 거라는 건 인류의 오랜 경험이다. 무엇보다 소설 전개의 매뉴얼처럼 훼방꾼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느닷없지만 개연성 있는 이들은 꾸역꾸역 산장으로 찾아온다.
부자들을 표적으로 범죄를 이어간 지존파를 연상시키는, 추리물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가진 남성 넷(알고 보니 그중 한 명은 산장 주인의 손자이자, 안나의 조카였다)과 이 동네 토박이로 어린 시절부터 산장의 내부를 궁금해했고 그래서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는 파출소 순경이 이곳의 문을 두드리며 장면 전환을 이끈다. 반전이 기다리는 결말까지 착착 읽어가는 건 순전히 독자가 할 일이다.

약간의 분절감이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웹소설에서 익히 경험한 것인데 장면이 바뀔 때마다 독자의 오감을 빨아들여야 하는 모든 연재의 숙명일 것이다. 젊은 독자층을 노렸다는 느낌은 출판사의 자사 블로그 '납치사건 전말 확인하러 가기!' 링크에서도 전해진다. 링크에 걸려 낚여 들어가면 추리력 측정 문제들이 연속된다. 합리적 추론으로 클릭을 계속해보지만 답은 정해져있다. 이 모든 게 알고 싶다면 책을 읽으라는 거다.
흥미롭게 다 읽어놓고 툭 내뱉는 어깃장일지 모르나, 10대 여자 아이돌을 성인 남성 4명이 납치해 한 달 동안 가둬둔다는 설정이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성인지 감수성이 서슬 퍼런 요즘의 잣대로는 신문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서 만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348쪽. 1만4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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