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에 약 뿌리고 꼬리 잡고 빙빙 돌려…고양이 급식소 주변 학대 빈번

입력 2021-10-31 16:59:11 수정 2021-11-01 08:26:14

현재 구군 차원에서 설치한 대구 내 고양이 급식소는 23개
먹이에 약 뿌리거나 직접적으로 폭행하는 등 급식소 주변서 학대 빈번
일부 급식소 담당자 중 관리 소홀한 경우 있어 사후 모니터링 강화도 필요해

하체를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고양이
하체를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고양이 '땡이' 모습. 대구 남구 봉덕동에 있는 한 고양이 급식소를 담당하는 김모(68) 씨는 한 달 전 평소 급식소를 자주 이용하며 붙임성 좋은 고양이 '땡이'가 급식소 편상 아래에 가만히 있길래 가서 확인해 보니 하체를 쓰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전했다. 독자 제공

대구 남구 봉덕동에 있는 한 고양이 급식소. 이곳을 이용하는 고양이 '땡이'는 한 달 전 사료를 먹다가 학대를 당했다. 누군가가 땡이의 꼬리를 잡고 빙빙 돌려 꼬리와 연결된 다리 신경 조직이 파괴돼 하체를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급식소 관리자가 발견하기 전까지 땡이는 급식소 아래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땡이는 이 학대로 항문 조직에도 문제가 생겨 배변 활동도 원활히 못하고 있다.

길고양이 보살핌을 위해 구·군 차원에서 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으나, 동물 학대 방지 관리가 허술하다는 문제가 제기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31일 대구시와 구·군에 따르면 구·군 차원에서 설치한 고양이 급식소는 북구 6곳, 달서구와 중구 각 5곳, 남구 4곳, 동구·서구·달성군 1곳씩 모두 23곳이다. 급식소 한 곳당 한 명씩 담당자(주민)를 선정해 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간단하게 청소를 하고 있다.

하지만 길고양이를 보살피기 위해 설치된 급식소에서 동물 학대가 자주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구 봉덕동에서 2019년부터 고양이 급식소를 담당해 온 김모(68) 씨는 "고양이를 직접 학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양이 사료에 약을 태워 죽이는 경우도 부지기수로 발생한다"며 "관리자지만 매번 급식소 앞을 지키며 감시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동물 학대 발생 시 사후 대처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대로 하체를 쓰지 못하게 된 고양이 땡이를 키우는 주민(45)은 "해당 급식소 인근에 폐쇄회로(CC)TV가 있어서 경찰에 찾아가 확인을 요청했으나 경찰 측에선 증거가 없으면 CCTV를 못 보여준다는 식으로 나왔다"고 했다.

주기적인 모니터링도 소홀하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급식소 운영을 맡은 각 구청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대부분 구청들은 민원이 발생할 때만 현장에 나가보거나 1년에 한 번 정도 현장 점검에 나서는 등 주기적인 모니터링은 미흡한 것으로 확인됐다.

10월 중 세 차례 방문해 확인한 남구 봉덕동에 있는 또 다른 고양이 급식소는 언제나 먹이를 준 흔적이 없고 관리가 안 된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언제 줬는지 모를 고양이 먹이 캔엔 썩어서 굳은 음식물 덩어리와 비둘기 깃털이 섞여 있었다. 주변 청소도 전혀 안 돼있는 모습이었다. 윤정훈 기자
10월 중 세 차례 방문해 확인한 남구 봉덕동에 있는 또 다른 고양이 급식소는 언제나 먹이를 준 흔적이 없고 관리가 안 된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언제 줬는지 모를 고양이 먹이 캔엔 썩어서 굳은 음식물 덩어리와 비둘기 깃털이 섞여 있었다. 주변 청소도 전혀 안 돼있는 모습이었다. 윤정훈 기자

10월에 세 차례 방문한 남구의 또 다른 고양이 급식소에는 먹이를 준 흔적이 없고 관리가 안 된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고양이 먹이 캔에는 썩어서 굳은 음식물 덩어리와 비둘기 깃털이 섞여 있었다. 급식소 옆에는 버려진 커피 테이크아웃잔 등이 있었다.

동구 효목동의 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는 이모(50) 씨는 "급식소가 나무로 돼 있어서 비를 맞으면 썩기 때문에 내가 따로 상자로 급식소를 만들었다"며 "상황이 이런데 구청 측에서 나와 모니터링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김혜전 대구고양이보호연대 활동가는 "동물을 학대하면 처벌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며 "또 담당자가 급식소 관리를 소홀하면 민원이 발생해 급식소 자체가 철거될 수 있기 때문에 책임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