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께선 너무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셨습니다. 4남 2녀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시어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열아홉살엔 아버지마저 여의셨죠. 해방 한 해전인 1944년엔 열아홉 살 나이에 일제에 강제노역 되시어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시다가 이듬해 해방이 되어 20세 때 일본에서 귀국했습니다. 또 5년 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해 그해 여름 강제징집됐고, 남산학교에서 기초훈련만 받고는 격전지 영천신녕전투에 참전(6사단2연대) 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으셨죠. 하지만 북진하여 평북 덕천전투에서 중공군에 밀려 혹한과 눈 속에서 후퇴하다가 개성전투에서 그만 손과 발에 심한 생인손과 동상을 입어 마산 제1육군병원에 후송되어 치료받고 다음 해(1951.5.2.)에 의병제대를 해서 집에 왔다고 생전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집엔 엄마와 첫돌지난 큰딸, 둘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계실 땐 늘 한복을 즐겨 입으셨습니다. 조끼도 꼭 껴입으시고 무더운 여름철엔 삼베옷을 즐겨 입으셨습니다. 제가 장가갈 때 처음으로 맞춤 양복을 입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선 어린 시절 공부 못한 게 한이 되어 이 아들만은 공부 시켜 그 성공담을 맛보시려고, 대리만족 하시려고 하였는데 그 지극한 마음을 그땐 저는 철이 없어 몰랐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추운 겨울 어느 날, 서문시장 골목길 국밥집에 가서 부자간에 따끈한 소고기국밥을 땀 흘리며 먹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버지, 이 아들 안동훈련소 나와서 (1974.11.23)군용열차타고 부산 병기 학교 갈 때 아들 얼굴 한 번 더 보시려고 애쓰시던 그 모습, 그 후 이 아들 파주 2 기갑에 배치되고 얼마 안 있어 그 멀리 천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버스, 기차 또, 버스 타고 면회 오셨습니다. 떡과 닭고기를 앞에 놓고 부자간에 한동안 말없이 눈물만 흘렸었지요. 아버지! 46년이 지났는데도 이 아들 그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서신들과 제가 56년 넘게 써 온 60권의 일기장과 함께 보고 또 생각하면서 지금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답니다.

아버지, 제가 국민학교때 새 책을 받아오면 비료 포대로 책을 입혀주시고는 철필(펜)에 잉크 찍어 '산수, 2ㅡ1, 구본훈'라고 쓴 그 책들을 61년이 지난 지금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답니다. 아버지의 손때가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적 주위 분들 말씀이 "저 어른은 법 없이도 사실 양반"이라고 종종 말씀하셨답니다.
아버지. 이 아들하고 20리 떨어진 하빈면 대평리 제 외가에 갈 때 길 중간쯤에 하빈 현내동의 진외가에 가서 꼭 제가 웃어른께 인사를 시키시는 좋은 습관을 길러 주셨습니다. 아버지, 살아생전 마지막, 이 아들한테 신신당부하신 그 말씀 제 평생 잊지 않고 되새기며 살겠습니다. 아버지, 요즘 같은 좋은 시절 곁에 계신다면 제가 모는 개인택시에 엄마와 함께 뒷좌석에 모시고 앞엔 아들 며느리와 같이 가고픈 곳 찾아가서 구경도 하고 맛난 음식도 먹고 하면 그 얼마나 좋을까? 그저 상상만 해 봅니다.
작년엔 15년 무사고 운전자상도 받았습니다. 아버지와 엄마께서 뒷받침해 주신 보답으로 아들은 그간 틈틈이 써온 나의 생활한 시선집과 나의 글, 나의 이야기 모음, 이름 붙여 두 권의 책으로 묶어 올해 중에 발간할 예정입니다. 가끔가다 지나간 옛 추억을 떠 올리면서 그 시절 그리워하렵니다. 아버지와 맺은 좋은 인연 잊지 않고 늘 추억하며 살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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