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박상영 작가가 첫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를 냈다. 지난해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서 전반부가 연재됐던 작품이다. 웹진에 실린 내용 일부가 수정됐다. 단행본의 첫 문장이 "한 시간여의 인터뷰가 끝나고 난 후 나는 조금 피곤한 상태였다"였든, 웹진이 "나는 헤드라인에 '수성못'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 기사를 클릭했다"로 시작했든 그의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흡인력이 웹소설 베스트리그 뺨친다. 펼치면 끝까지 다 보게 돼 있다. 소설가는 소설로 말한다. 책갈피가 필요없는 소설이다. 도입은 추리소설인가 싶다. 임상심리상담사로 추정되는 주인공에게 '1004'라는 아이디로 인스타그램 메시지가 도착한다. "오랜만이다. 혹시 나를 기억하느냐. 호수에서 시신이 발견됐고 아주 빠른 속도로 신원이 밝혀졌다"는 내용이다. '과거로부터 온 편지'다.
과거를 회상하며 시간은 한일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으로 간다. 배경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지방도시 'D시'다. 백골이 발견된 호수는 '수성못'이다. 아무리 소설 말미에 '소설 속 일부 지명은 실제에서 빌려왔으나 어디까지나 가상의 공간이다'고 적시했어도 여긴 누가 봐도 '대구'다. 머큐리랜드로 불리던 수성랜드(워터캐슬랜드라 안 불러 다행이다), 동성로 캔모아, 한일극장, 교동시장이 실명으로 오른다. 대구를 배경으로 '응답하라, 2002'를 제작한다면 이 소설을 원작 시나리오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명작과 범작의 차이는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을 살리는 적확한 표현력은 박 작가의 습성이자 강점이다. 2018년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가 자주 거론된다. 특히 인권 유린의 장이 된 다양성 인권영화제 뒤풀이에서 진짜 퀴어 영화감독이 영화계 관계자들과 싸우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명작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거여서 국립극단은 이 작품을 연극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가 단기간에 괄목할 만한 존재감을 뽐내는 대세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작품은 퀴어소설이다. 그것도 10대의 이야기다. 목포를 배경으로 한 김세희 작가의 '항구의 사랑'과 결이 같다. '항구의 사랑'이 10대 여성의 이야기였다면, '1차원이 되고 싶어'는 10대 남성들을 주축으로 한 이야기다.
소설 속 화자는 유일하게 별명인 '해리'로 불린다. '해리포터'의 그 해리다. 체육시간에 혼자 해리포터 소설을 읽고 있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해리(Harry)는 한글로 쓰면 여성적인 이름이지만 영어로는 남성적인 이름이기도 하다.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 공격수 해리 케인이 대표적 예이지 않은가.
별명을 붙여준 이는 '도윤도'. 주인공 해리의 동창이다. 해리는 도윤도를 좋아한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몰래 책상 위에 올려놓을 만큼. 작품의 흡인력을 추동하는 건 예상치 못한 각종 사건들이다. 초콜릿을 윤도의 자리에 올려두고 나오는 걸 같은 학원, 같은 반 '이무늬'에게 들키는 게 첫 사건이다.
스스로가 보편의 무엇에 속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아버린 사람이 갖게 되는, 일종의 강박이자 콤플렉스인 표정 감추기 신공에도 이무늬는 귀신같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해리의 능력을 십분 활용한다. 비밀은 사람을 필요 이상으로 조숙하게 만들어버렸기에 표정과 눈빛이 여느 10대와는 달랐던 해리는 교동시장 등을 돌며 이무늬의 담배 심부름을 족족 완수한다.

눈치 10단 이무늬도 약점은 있다. 족집게 일타강사도 제 아이 앞에서는 핏대만 세우기 마련. 무늬는 자신의 연애사, 좋아하는 언니 이야기를 해리에게 풀어내며 베스트 프렌드(베프) 관계를 공고히 한다. 그러면서 둘은 교동시장, 한일극장, 대구역으로 추정되는 D역 주변 등을 종횡무진 누빈다.
그런데 해리가 좋아하는 윤도는 '오는 사람 안 막는' 타입에 가깝다. 인류애적 의무감과 거리는 멀지만, 윤도는 해리와 교감하는 데 적극적이다. '1차원이 되고 싶어'라는 제목은 해리와 윤도의 대화에서 따왔다. 누워서 천장을 보면 억눌리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는 해리에게 윤도는 "창문 너머 세계를 떠올려봐. 거기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너랑 나를 연결하면 또다른 선이고, 천장 너머의 또다른 세계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너와 나를 잇는 선분, 1차원이라는 것이다.
사실 400쪽에 가까운 이 소설은 모두의 처절한 생존기에 가깝다. 퀴어라는 정체성을 감춰야하는 건 기본이고 정체성이 비슷한 퀴어가 왕따로, 학교폭력으로 고통받아도 모른 체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편을 들거나 도왔다간 의심받기 십상이었다.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로 비치는 대목에서는 비단 퀴어만의 생존기로 읽히지 않는다.

작가는 2016년 단편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의 문학동네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2019년에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으로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뒤 유력 문학상에 적잖이 이름을 올렸다. 올해도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최근 미국의 출판 전문 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2021년 가을 주목할 작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412쪽. 1만4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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