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장마, 수확철 농민들 시름…과일 햇빛 못 봐 당도 떨어지고 병충해

입력 2021-09-08 17:56:39 수정 2021-09-09 10:15:44

사과, 포도 등 과수 농가는 당도 저하, 과실 터짐, 병충해 삼중고
벼 농가도 쭉정이 늘어날까 봐 발 동동
태풍 직격탄 포항 농민 "무너진 과수원 무덤 삼겠다"는 한탄까지

탄저병이 발생한 청도 농가에서 감이 떨어진 모습. 청도군 제공
탄저병이 발생한 청도 농가에서 감이 떨어진 모습. 청도군 제공
탄저병이 발생한 감. 청도군 제공
탄저병이 발생한 감. 청도군 제공

가을 장마로 경북 농가들의 시름이 깊다. 사과, 포도, 감 등 과수 농가는 잦은 비와 일조량 부족으로 병충해는 물론 당도 하락 등 품질 저하 걱정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벼 농가들도 이삭마름병 등 병충해 확산 대비에 나섰고 알곡이 제대로 익기 위한 햇빛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

◆품질 저하·과실 터짐·병충해 '삼중고'

최근 잇따른 비로 경북 사과의 착색에 비상이 걸렸다. 대표 사과 주산지인 청송에서는 추석을 앞두고 사과 출하가 한창이지만 품질이 좋지 않아 지난해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추석 대목을 잡기 위해 과수원마다 반사필름 설치, 부분적 가지치기 등 햇빛 모시기를 통한 색 내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청송군 관계자는 "앞으로 비가 계속되면 사과 잎이 떨어지는 갈반병이 우려되고 만생종 부사에도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위군 부계면에서는 일부 사과 과수원에 탄저병이 발생해 농가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과실에 피해를 주는 탄저병은 비가 온 후 급속히 확산하는 경향이 있다.

부계면 사과농가 박모 씨는 "탄저병 확산을 막기 위해 병든 사과가 보이면 즉시 제거하고 성분이 다른 약제를 번갈아 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주 사과 농가들도 탄저병, 점무늬낙엽병 피해를 호소한다. 성주군농업기술센터는 "잦은 비와 저온다습한 환경으로 세균성 병해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면서 "날씨가 좋아지면 균제와 충제의 동시 긴급 방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9월 중하순 수확기를 맞은 김천의 샤인머스켓 포도 농가들도 피해를 우려한다. 가격이 높은 추석 명절 앞에 출하를 해야 하지만 잦은 비로 일조량이 부족해 당도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상주에서는 노지 포도 농가가 걱정에 잠겼다. 하우스 재배가 많은 샤인머스켓과 달리 노지에서 재배되는 캠벨은 잦은 비로 열매가 터지는 피해가 심각하다.

포도는 습도가 높아지면 껍질이 갈라지는 열과 현상을 겪는다. 상주시는 열과 피해로 올해 생산량이 30%가량 줄 것으로 본다.

시는 열과 피해 포도에 대해 주스나 와인 제조 가공 업체에 적극 수매를 권장하고 있지만 정상 가격의 10%에 불과한 헐값이어서 농가 피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산 포도 농가도 시름이 깊다. 한창 익을 시기인 8월에 비가 20일이나 왔고 이달에도 7일까지 5일간 비가 내렸다. 거봉, 캠벨 등 흑포도 계통은 광택이 떨어지고 당도마저 낮은 데다 열과 현상의 삼중고를 겪고 있다.

그마나 샤인머스켓은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산지 가격이 예년과 비슷하거나 10%정도 떨어져 있다.

영천시 공동방제단 차량이 미국선녀벌레 등 병해충 피해 발생지역에서 방제용 약제를 살포하고 있다. 영천시 제공
영천시 공동방제단 차량이 미국선녀벌레 등 병해충 피해 발생지역에서 방제용 약제를 살포하고 있다. 영천시 제공
탄저병에 감염된 복숭아와 포도. 영천시 제공
탄저병에 감염된 복숭아와 포도. 영천시 제공

◆과수 병충해 막기 안간힘

복숭아, 대추, 감 농가도 피해 우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도군농업기술센터는 이달 출하하는 만생종 복숭아가 절대적인 일조량 부족으로 수확조차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당도가 떨어지고 낙과가 많아 공판장 위판 물량도 감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산의 대추 농가들은 "대추가 한창 익어야 할 시기인데, 지난달 비가 자주 내려 작황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우려했다.

군위, 청도 대추 농가들도 열과 현상과 당도 저하 등으로 추석 제수용 출하에 어려움을 예고하고 있다.

청도 감의 경우에도 탄저병 발생 등 병충해 우려로 생과용은 수확을 앞당기도록 유도하고 가공용은 방제를 권유하고 있다.

영천에서는 금호읍, 대창면을 중심으로 미국선녀벌레 개체수가 급증해 추석 대목을 앞둔 포도, 복숭아 등 과수농가에 피해를 주고 있다. 발생 면적만 101개 마을, 925ha에 달한다.

미국선녀벌레는 나무 수액을 빨아 피해를 주고 하얀 왁스 물질을 분비해 외관상 혐오감을 준다.

탄저병 피해도 늘고 있다. 영천시는 이달 6~17일 '돌발병해충 중점방제기간'을 운영, 5ha 이상 피해가 발생한 47개 마을에 공동방제용 약제를 긴급 공급했다.

이삭마름 증상이 나타난 구미지역 벼의 모습. 구미시 제공
이삭마름 증상이 나타난 구미지역 벼의 모습. 구미시 제공

◆잦은 비로 벼 쭉정이 걱정

잦은 비는 벼농사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구미시는 지역 생산량의 85%를 차지하는 일품벼에서 이삭마름 증상이 나타나 비상이다. 벼 이삭이 새까맣게 변하거나 잎이 마르는 세균성 이삭마름병은 잦은 비로 번지고 있다.

낱알이 제대로 차지 않고 쭉정이로 변할 수 있어 현장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선산, 신동, 고아, 무을, 옥성, 산동 등 6개 지역 벼를 대상으로 긴급 방제에도 나섰다. 이미 1, 2차 방제를 마쳤고 고아읍은 3차 방제도 할 예정이다.

구미시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올해 이삭마름 증상이 예년보다 많이 심각해 긴급방제 등 최대한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지역도 비슷한 처지다. 고령 특산품 '고령옥미'는 7월 11일 개진면에 집중된 폭우로 피해를 본 데다 최근 잦은 비로 일조량 부족을 겪고 있다. 강면원 고령군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장은 "벼에 일부 피해가 예상돼 추석 이후 추이를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삭도열병이 발생한 벼의 모습. 의성군 제공
이삭도열병이 발생한 벼의 모습. 의성군 제공

경북 4대 평야 중 하나인 의성지역도 이삭도열병이 확산돼 긴급 방제령이 내려졌다.

의성군농업기술센터는 "벼는 수확 한 달 전 농약 살포를 금지한다. 이번 주가 이삭도열병 방제 적기인 만큼 농가가 적극 대응에 나서도록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추 농가들도 근심이 크다.

영덕지역 고추 농가는 낮장마로 뿌리가 녹는 등 피해가 발생해 수확이 어려운 곳이 있을 전망이다. 청송지역 고추 농가들은 수확을 미루고 있다. 이런 가운데 완숙한 고추가 노지에 오래 방치돼 탄저병 등 병충해 피해도 본다. 방제약을 연일 살포해야 해 농가에 부담이 되고 있다.

성주에서도 고추 진딧물, 총채벌레의 밀도가 높아져 병충해 발생 지역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포항시 북구 죽장면의 한 사과 농가에 태풍으로 떠밀려온 자갈과 모래가 가득 차 있다. 신동우 기자
포항시 북구 죽장면의 한 사과 농가에 태풍으로 떠밀려온 자갈과 모래가 가득 차 있다. 신동우 기자

◆태풍 피해 본 포항, 깊은 한숨

"내 나이가 여든이 넘는데 다시 사과 나무를 심어서 뭐하노. 그냥 땅을 버리고 콱 죽었으면 싶소."

추석 대목을 앞둔 포항 농가들은 즐거움보다 한숨이 깊다. 태풍 '오마이스'로 무너진 농경지를 언제 복구할지 기약이 없다. 특히 호우가 집중된 죽장면의 사과 농가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죽장면 600여 농가는 1천여ha에서 과수 농사를 짓고 있다.

이번 태풍으로 60%가량이 낙과 등 피해를 본 것으로 집게됐다. 죽장면 사과 농가 정모(82) 씨는 "대부분 나무는 뿌리째 쓰러졌고 그나마 남은 것도 흙더미에 뒤덮여 못 쓰게 됐다"며 "차라리 땅을 버리고 떠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과수 농가는 나무를 다시 심어도 과실의 상품성이 갖춰지려면 최소 5년은 걸린다. 손상된 나무를 치우고 평평하게 고른 땅에 농사용 흙을 성토하는 일에도 천문학적 돈이 든다.

강필순 포항시의원(죽장·신광·청하·송라·기계·기북면, 국민의힘)은 "농촌에 나이든 분이 많아 다시 수 년을 투자해 터전을 일구라는 말을 차마 하기 힘들다"면서 "엉망이된 과수원을 '무덤으로나 삼을란다'는 농민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