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기의 조손(祖孫) 가정’,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일 없어야

입력 2021-09-01 05:00:00

대구에서 10대 형제들이 친할머니를 살해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자신들을 10년 가까이 길러준 77세 친할머니의 목숨을 앗아간 형제들의 범행 동기가 "잔소리와 심부름에 짜증이 나서"라고 하는데 말문이 막힌다. 패륜을 저지른 이들 형제가 의법 처리를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아울러 이 비극적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조손(祖孫) 가정 문제에 대한 냉정한 성찰도 필요해 보인다.

두 형제는 9년 전 부모와 연락이 끊긴 뒤 29㎡밖에 안 되는 좁은 집에서 조부모와 살아왔다. 신체장애 판정까지 받은 고령의 조부모들은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아야 할 처지이지만 손자 둘을 떠안았다. 구청의 기초수급 대상 지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경제적 어려움도 컸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두 형제는 정서행동장애 심리치료 혹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동생은 학교 생활 부적응 문제로 퇴학까지 당했다.

이 가정은 언제 돌발 사태가 발생할지 모를 위기 가정이었다. 이처럼 부모의 이혼·가출·사망 등으로 생겨나는 조손 가정은 여러 가족 유형 가운데 가장 취약성을 띤다. 조손 가정 아동들은 사회적 박탈 상태 및 결핍 지수가 매우 높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잘 말해준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조손 가정은 5만2천여 가구, 아동 수는 5만9천여 명에 이른다.

6만 명에 가까운 미성년자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그들 조부모도 양육 부담으로 고통을 겪는데도 우리나라의 조손 가정 실태 조사는 10년 가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효적 대책 마련은커녕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않는 것은 공공 부문의 직무 유기다. 고령인 조부모들은 공공 지원 복지 프로그램이 있다 해도 찾아서 신청하기 어렵다.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가 시급한 것은 이 때문이다. 조손 가정 구성원들이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방치돼 고통과 비극의 나락에 빠지지 않도록 정부 및 지자체의 적극적 행정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