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 63돌 화성산업 이홍중 회장 "건설분야 스마트화, 종합디벨로퍼 면모 굳히겠다"

입력 2021-08-31 10:05:40 수정 2021-08-31 20:19:48

광주 김대중 센터·서울 공원·대전 지하철, 전국 랜드마크 시공 회사 명성 널리 퍼져
협력사 존중하고 동반성장해야 좋은 결과…지역민 한결같은 성원, 최고 품질로 보답

이홍중 화성산업 회장이
이홍중 화성산업 회장이 "63년간 화성이 존속하고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지역민의 성원과 수많은 협력업체 의 도움이 있었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매일신문DB

화성산업(주)가 1일 창사 63주년을 맞았다. 인생으로 치면 환갑을 넘어 고희로 치닫는 중이다. 지역 최초의 건설사이자 최고령 회사 가운데 한 곳이 됐다. 이홍중 회장은 63년의 화성 역사 가운데 47년을 함께 했다. 이쯤 되면 그의 인생이 화성이고, 화성도 그의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을 법하다. 63번째 생일을 맞는 화성이 걸어온 길을 이 회장 입을 통해 재조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63주년 소회는?

- 지역에선 가장 오래됐고, 전국 100대 건설업 가운데 우리와 대림, 삼부토건 등 5~6개 정도밖에 이 정도 역사를 지닌 곳이 없다. 삼부토건이 국내 건설업 1호 면허를 취득했고, 우리가 1958년 172번째로 면허를 얻었다. 현재 건설업 관련 회사가 1만 개에 달하는 것을 보면 화성의 역사는 지역을 넘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2세 경영을 선친께 권유받았나?

대학을 졸업하고 해군에서 시설 장교로 복무했다. 사실 제 건설 역사의 시작은 여기서 출발한다. 1974년 화성에 입사했는데 이미 그 전에 건설 관련 업무와 접하고 있던 것이다. 입사 후 벌써 47년이 흘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건설업이 내 운명 아니었나' 생각된다.

▶화성과 동고동락하면서 보람된 일도 많았을 것 같다.

- 그보다는 어려운 일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좋을 때는 잠시지만 어려운 기간은 그것을 극복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람됐던 일을 꼽자면?

- 울릉도 일주도로 사업이다. 전장 39㎞짜리 도로를 놓는 그리 크지 않은 사업이었으나 공사기간은 무려 30년(1974년~2004년)이나 걸렸다. 당시 정부의 개발 정책에 따라 일주도로 건설이 계획됐으나 오지 중 오지로 꼽히는 울릉도에 들어가 공사할만한 회사가 국내에 없었다. 대기업도 그렇지만 웬만한 중견 업체들도 엄두를 못 냈다. 건설 자재를 수송할 방법이 없었고, 접안 시설도 전무한 상황이었다.

▶자재 조달 없이 어떻게 건설을 진행했나?

- 울릉도의 유일한 접안 시설인 도동항은 작은 고깃배만 출입할 정도로 작았다. 그래서 일주도로 사업의 첫 단추는 엉뚱하게도 접안 시설 구축이었다. 대형 선박이 안전하게 오갈 수 있도록 도동항과 주변을 정비했다. 이후 대형 바지선을 인수해 건설 자재를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해변에서 현장까지 자재를 운반하기 위한 임도나 작은 도로까지 만들어야 했다. 종합해 보면 도로를 놓기 위해 접안·운반 시설 등을 새로 만들어 가며 진행한 거대 복합 공사였던 셈이다.

▶공사비가 많이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 울릉도 일주도로는 국도로 승격이 되지 않은 지방도로였다. 따라서 예산이 국비로 충당되는 것이 아니라 경북도 자체 예산으로 충당됐다. 열악한 지방 예산에서 어마어마한 사업비를 대려니 부담이 적지 않았던 탓에 우리도 결코 남는 장사를 할 형편이 못됐다.

▶그래도 보람됐다는 말인가?

- 나중에는 일주도로가 전국 아름다운길 100선에 꼽혔다. CNN은 한국관광지 50선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도로 한편에 작은 공원을 조성했는데, 울릉주민들이 화성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아 '화성공원'으로 이름 지어줬다. 돈을 떠나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은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화성의 위기 시절을 통상적으로 외환위기 때로 꼽는다. 그밖에 힘들었던 때도 소개해 달라.

입사 전 일이지만 1959년도 사하라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다. 당시 화성은 도로와 항만 분야 건설을 크게 하고 있던 터라 태풍의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영남권에서 화성이 추진 중인 현장들은 전부 유실되거나 크게 부서지는 사태를 피할 수 없었다. 장비 수몰비 등을 포함해 자본금의 10배에 달하는 2억원 규모를 고스란히 날렸다. 그때는 재해복구 비용은 물론 산업 관련 보험제도까지 전무한 시절이었다. 보상받을 길이 어디에도 없었다.

▶어떻게 만회했나?

포기해 좌절하지 말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으나 당시 경제환경에선 먹거리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였다. 서 있을 힘조차 없었지만, 안간힘으로 버티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다. 유실된 도로, 항만 공사 수주가 밀려온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위기로 내몰았던 사하라 태풍이 다시 회생시켜 준 셈이 됐다.

▶위기를 겪어서인지 화성은 상생 경제를 강조하고 있다.

인생에서 바닥을 쳐본 사람들은 안다. 세상에 영원한 갑과 을의 관계는 없다는 것을. 화성은 생존의 위협을 겪어봤기에 하청의 고마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미래를 위해서는 원청과 하청의 구분은 사라져야 한다. 두 집단 모두 같은 경제환경에 처해있기 때문에 어느 한 곳만 잘 될 수는 없다. 협력사를 존중하고 동반성장해야 결국 나와 상대방 모두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이홍중 화성산업 회장
이홍중 화성산업 회장

▶화성장학문화재단 설립도 같은 기조에서 출발한 것인가?

- 부친인 고(故) 이윤석 명예회장께서 배움을 충분히 하지 못하셨기에 재단을 설립한 것으로 알고 있다. 총 100억 원의 출연금을 내셨는데 살아생전 50억을, 돌아가실 때 나머지 50억을 출연하면서 약속을 지키셨다.

▶화성에 대한 자랑 좀 해달라.

전국의 랜드마크에 메이드인 화성이 많다. 대구 엑스코가 그렇고,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부산 시민공원, 대전의 유일한 지하철 1호선도 화성이 만들었다. 서울엔 4대 공원(올림픽공원, 월드컵공원, 북서울꿈의숲, 서울의숲)이 있는데 이 가운데 2곳도 화성 제품이다.

▶화성이 지향하는 미래상이 있다면?

- 건설도 고도화되고 스마트해져야 한다. 고도화와 관련해선 단순히 건설 쪽에만 관심을 가져선 안 된다. 예를 들어 노후한 수도관 때문에 연간 허비되는 누수 금액이 적지 않은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수도관 첨단화 사업을 등한시해선 안 된다. 눈에 띄는 건물 외형도 중요하지만, 그 건물에 따른 저변 시설도 함께 첨단화해야 한다. 또 건설이 스마트화를 이루면 한 해 동안 같은 도로를 수차례나 파고 덮고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상수도 놓는다고 팠다가 덮고, 가스관 놓는다고 파헤치고, 전선 지중화를 위해 또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러는 동안 교통체증에 따른 물류비용 증가까지 고려하면 경제적 손실은 엄청나다. 건설이 정확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사업 시기를 통합하는 등 브레인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는 스마트화 도입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화성은 종합디벨로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가는 일에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을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지역민께 하고 싶은 말.

- 63년간 화성이 존속하고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지역민의 성원이 있었다. 수많은 협력업체와 관계자들도 감사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다. '화합을 이룬다'는 회사명(화성. 和成)처럼 앞으로도 공동 시너지의 힘을 믿고 모든 이들과 화합하며 전진할 것을 약속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