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동네책방] <37> 경주 황리단길 '어서어서'

입력 2021-09-13 10:58:14 수정 2021-09-13 17:59:59

‘읽는 약 책 봉투’에 책 담아나가는 이들 부지기수
“책은요,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거예요”

경주 황리단길의 동네책방
경주 황리단길의 동네책방 '어서어서'. 김태진 기자

원룸 크기 정도 될까. 10명 정도가 들어서면 움직이기 쉽지 않을 공간이다. 벽면에 여백이 없다. 온갖 사진과 포스터로 가득하다. 영화 '캐롤' 등의 주요 장면 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대정부 질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그렇다고 어지럽지도 않다. 테트리스 블록을 맞춰나간 듯 공간 활용력은 최상급이다.

무엇보다 이곳에선 여느 책방에선 보기 드문 장면들이 반복된다. 손님들이 확 몰려 들어왔다가 확 몰려 나간다. 십중팔구는 사진을 찍으러 들어온다. 이질적인 풍경이다. 책이 안 팔리는 것도 아니다. 매우 잘 팔린다.

책을 사려고 작정하고 온 사람들처럼 책을 사서 나간다. 점원은 수시로 책을 정리한다. 책이 빠진 빈자리를 채워 넣는 건 그의 끝없는 업무다. 책이 날개 돋친 듯 약봉지, 이곳의 마스코트가 된 '읽는 약 책 봉투'에 담겨 팔려 나간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서점,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서점', '어서어서'에서 목격된 특이점이다.

경주 황리단길의 동네책방
경주 황리단길의 동네책방 '어서어서'. 김태진 기자

경주 황리단길의 동네책방 '어서어서'는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의 앞글자를 연결해 붙인 이름이다. 책방지기 양상규 씨는 어디에나 있는 게 서점이지만 어디에도 없는 서점을 만들고 싶은 마음을 담아 서점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우리 문학이 이렇게도 인기가 높았나 할 말큼 시, 소설, 에세이 등이 대접받고 있다는 건 북큐레이션으로 알 수 있다.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의 시집 시리즈가 제자리인양 책방 한 면을 채우고 있다. 좁은 책방에서 이 정도 공간을 할애했다는 건 마치 귀한 자식을 위해 아랫목을 내놓는 부모의 심정과 같은 것이다. '이 책도 있네' 할 만큼 웬만한 소설책들도 어디쯤엔가 똬리틀고 있다.

그럼에도 이곳의 인기를 설명하긴 쉽잖다. 책방지기가 여유있게 손님과 책과 관련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앉아서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북적임은 어디에서 온 걸까.

경주 황리단길의 동네책방
경주 황리단길의 동네책방 '어서어서'. 김태진 기자

책방지기 양상규 씨가 지난해 발간한 책,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대형 서점 부럽지 않은 경주의 동네 책방)'은 그 까닭을 2017년 모든 매체에서 앞다퉈 경주를 다루고 황리단길을 집중 조명한 데서 찾는다. 양 씨는 "어서어서 책방도 2017년 문을 열었다. 시기적으로 잘 맞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너도나도 책을 구매해 나가는 현상도 궁금증을 몰고 온다. 이는 tvN에서 방영된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 어느 정도 풀린다. 특히 김영하 작가의 평소 지론인지 책방을 살리려는 '한 말씀'인지 알 수 없지만 경구처럼 구전된, "책은요,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거예요"를 실천하려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느낌 오는 대로 두어 권씩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모습에 고개가 끄덕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