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호 사회부 차장
#"충청 감사 이홍연이 이르기를, 사가의 여자 종 순례가 깊은 골짜기에 살면서 5세 딸과 3세 아들을 죽여 먹었다는데, 사실을 확인하니 '딸과 아들이 병 때문에 죽었고, 굶주렸던 탓에 삶아 먹었다'고 했다. 순례는 보기에 흉측하고 참혹해 얼굴이나 살갗, 머리털이 마치 미친 귀신 같은 꼴이었다." 현종실록 중 현종 12년(1671년) 3월 21일의 내용이다.
#'살아 있는 시체'인 좀비(Zombie)가 도망치는 사람을 덮쳤다. 입으로 생살을 물어뜯었다. 걸신(乞神)들린 듯 산 사람을 마구 파먹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 속 좀비는 굶주림 끝에 괴물이 된 민중이다. 이들은 배고픔을 못 이겨 시신을 나눠 먹은 뒤 좀비가 됐다. 물린 사람도 전염병처럼 좀비로 변했다.
각본을 쓴 김은희 작가는 킹덤의 테마가 '굶주림'이라고 했다. 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경신대기근'이 손꼽히는 이유다. 경신대기근은 조선 현종 때인 1670년(경술년)과 1671년(신해년)에 걸쳐 일어났다. 바로 '딸과 아들을 먹었다'는 순례의 기록이 있었던 때다. 임진왜란(1592년)과 병자호란(1636년) 등 큰 전쟁을 치른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시기였다.
경신대기근으로 한반도 전역은 생지옥이 됐다. 굶거나 병들어 죽은 사람이 80만~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조선 인구의 5% 정도 규모다. 대기근의 원인으로 이상기후가 지목된다. 당시 세계는 '17세기 소빙하기'로 불리던 시기였다. 우박과 서리, 가뭄에다 태풍과 홍수까지 덮쳤다. 메뚜기 떼 등 병충해의 습격도 있었다.
자연재해로 전국 대부분 고을이 흉작이었고, 식량난을 피할 수 없었다. 어딜 가든 굶어 죽은 시신이 길거리를 메웠다. 겨울에는 얼어 죽지 않으려 남의 옷을 빼앗거나 시신의 옷을 벗겨 입는 사람들도 있었다.
콜레라와 홍역, 천연두 등 전염병도 유행했다. 먹을 것을 주는 진휼소가 마련된 서울로 유민들이 몰렸고, 이로 인해 서울까지 전염병이 퍼졌다. 양반가는 물론 궁궐까지 감염이 번졌다. 시신 수천 구를 합동으로 매장하는 일이 수차례 반복됐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현종은 청나라에 쌀을 요청하자고 했다. 하지만 신하들은 국가 위신이 떨어진다며 반대했다. 명분을 앞세운 정쟁이었다. 24년 후 1695년(숙종 21년)에 다시 대기근이 발생하고서야 청나라에서 쌀 3만 석을 들여왔다. 민중의 삶이 무너진 와중에도 정치는 다투기 바빴다.
350년이 지난 2020년과 2021년, 경신대기근 때와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전염병인 코로나19가 전국을 뒤덮고 있다. 자영업자는 비명을 지르고,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늘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해 개인은 파산하고 가게는 폐업한다. 물가는 치솟고 있다.
그야말로 코로나 '킹덤'인 오늘날, 서민의 삶은 '좀비'처럼 변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는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서로 편을 갈라 흠집을 내려는 비난을 쏟아낸다. 구휼(救恤)을 위한 재난지원금은 지급 대상과 기준을 두고 한참 시간을 끌었다. '청나라 쌀'처럼 늦어진 백신 도입은 4차 대유행의 빌미가 됐다.
세월이 흐른 뒤 오늘은 어떻게 평가될까? '시대의 사초(史草)'라 불리는 언론에 그 실마리가 있는데, 최근 이런 기사가 눈에 띈다. '집을 잃고 차 안에서 생활한 50대, 수급자 심사 기간에 숨져' '폭염 속 숨진 노부부의 집 에어컨 없고 고지서만 수북' '생활고에 일가족 극단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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