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김경민(대구청년봉사단 단장) 씨 외할아버지 우태봉 씨

입력 2021-07-08 13:39:10 수정 2021-07-08 15:05:38

2000년 대구 중구 동인동 외갓집에 살고 있는 김경민(오른쪽 아래) 씨와 외할아버지 우태봉(왼쪽 두번째)가 가족들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 (가족제공)
2000년 대구 중구 동인동 외갓집에 살고 있는 김경민(오른쪽 아래) 씨와 외할아버지 우태봉(왼쪽 두번째)가 가족들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 (가족제공)

"남에게 해가 될 짓은 하지 말아라, 평생을 위해 10년만 고생하자"

올바르게 세상을 살아가는 가르침을 알려주셨던 외할아버지 그립습니다.

수동 오토바이를 타고 온 동네를 누비시던 우리 외할아버지의 당당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넓고 따스한 외할아버지의 등 뒤에 앉아 허리춤을 놓치지 않으려 꽉 잡던 작은 꼬맹이는 훌쩍 커버린 키만큼 꿈 많은 청년이 됐다.

외할아버지 집은 어린 시절 우리 손자, 손녀들의 아지트였다. 동인동이라 불리며 많은 손주가 모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도란도란 살기도 했다. 언제나 우리에겐 따뜻한 보금자리였던 동인동. 나는 손주 중에서도 특히 식탐도 많고, 자주 싸우는 사고뭉치였다. 그런 나를 보며 항상 삶에 대해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던 외할아버지. "내가 밥을 못 먹어도, 남의 제물은 탐내면 안 된다. ", "어릴 때의 10년 공부가, 평생을 좌우한다. " 등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지식을 쌓는 공부에 대해서도 게으르면 안 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행여나 어린 시절의 악동에 모습이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갈까, 걱정되었던 마음에 자주 손주들에게 말씀하셨다.

메밀면과 양갱을 즐겨 드시며 자주 하셨던 그 말, 어느새 저를 바르게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일제강점기, 광복, 6·25전쟁, 산업화, 민주화 등 대한민국의 근대화 역사와 함께 시간을 보낸 우리 외할아버지. 여러 직업군을 겪으며 일본어, 영어 등 외국어에도 능통하셨다. 매일 9시 뉴스와 아침 신문을 통해 세상의 변화에도 관심이 많았던 우리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께서 뉴스를 보고 계시면 만화를 보고 싶어 울며 떼를 쓰기도 했던 어린 시절,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립다. 가수 장윤정을 좋아했던 외할아버지는 날씨가 좋은 오후에는 TV를 끄고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1989년 경주 문무대왕릉앞에서 故 우태봉(왼쪽) 씨가 부인 김해수 씨와 함께 가족의 건강과 건승을 기원하며 물고기 방생을 기념해 찍은 사진. (가족제공)
1989년 경주 문무대왕릉앞에서 故 우태봉(왼쪽) 씨가 부인 김해수 씨와 함께 가족의 건강과 건승을 기원하며 물고기 방생을 기념해 찍은 사진. (가족제공)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 우리 외할아버지는 내 나이보다도 더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보내며 나에게도 고향을 만들어 주셨다. 외할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을 다니며 장을 보기도 했고, 가족을 마중 가기도 했다. 드라이브하러 가기도 했던 그 어린 시절이 지금도 정말 부럽다. 이제는 내가 운전하는 차로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좋은 구경 많이 시켜드릴 수 있는데... 외할아버지의 빈자리가 아쉽고 그립다.

사회의 일원으로 또 청년으로서 꿈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는 현재의 나를 당당히 보여드리고 싶다. 어린 시절 악동 같았던 모습이 아닌 온전히 내 노력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스스로 공부하고 경험하며 성장하고 있는 내 모습을 말이다. 외할아버지에게 든든한 손자의 모습을 자랑하고 싶다.

미국산 커피를 좋아하셔서 자주 드셨던 우리 외할아버지. 커피 한 잔의 여유라고 하던가, 장마가 시작된 요즘 같은 시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 인자한 모습에 마당에서 커피를 들고 있던 외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외할아버지는 2012년 새해를 맏이하고 갑작스럽게 세상과 이별하셨다. 아직도 새해 인사를 위해 통화를 하면서 하지 못했던 말이 가슴에 사무친다. "외할아버지 건강하세요..." 왜 나는 통화를 하면서 외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아직도 후회스럽다. 제대로 인사 한번 못하고 갑작스럽게 이별을 하게 됐다.

외할아버지 요즘 착하게, 성실하게, 살고 있습니다. 동생도 엄마도 잘 챙기면서 부지런하게 살고 있습니다. 언젠간 다시 보게 된다면 꼭 잘했다고 칭찬받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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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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