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소(面所)까지는 10리(4㎞) 길이었다.
걸어서 50분, 자전거로도 40분 이상 걸렸다. 면소 앞을 가파른 고개가 가로막고 있어 자전거는 '타기 반, 끌기 반'을 해야 했다. 두 다리나 두 바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네 바퀴의 버스를 타도 50분을 가야 했다. 승객이 차지 않으면 바퀴는 꿈쩍하지 않았고 고무줄 승차 시간은 족히 반 시간은 넘겨야 했다.
당도한 면소 뒤엔 '슈퍼'라는 플라스틱 간판을 한, 간판만 신식인 구식 상점이 있었다. 그래도 마요네즈, 케첩, 꽁치 통조림……. TV에서만 보던 '상상의 맛'이 진열장에 빼곡했다.
떠먹는 요구르트(이하 떠먹요)는 단연 인기였다. '요구르트를 숟가락으로 떠먹다니, 이것보다 신기한 게 또 있을까.'
한번은 버스를 두 번이나 타고도 남을 거금(300원)을 주고 '떠먹요'를 집어 들었다. 뚜껑에 묻은 하얀 액상부터 핥기 시작했는데 아뿔싸, 시큼한 맛이 돌았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맛. "아줌마, 상했어요." 서너 개를 바꿔 먹어봐도 하나같이 쉰 맛이었다. 못 믿겠다는 듯 주인아주머니도 맛을 봤다. "진짜 상했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시큼한 맛은 상한 게 아니라 '떠먹요' 고유의 맛이었다.
경북도의 신선한 실험이 시작된 지 지난 2일로 만 3년을 맞았다. 그간 경북도정의 혁신 열차는 쉼 없이 달려왔다. 성과도 있었고 아쉬운 점도 많았다.
100회를 훌쩍 넘긴 '화공 굿모닝 특강'과 '공부 모임'은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마중물이 되고 있다. 특히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경북형 사회적 거리두기'는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혁신 경북'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새바람'이 늘 환영받는 건 아니었다. 새것에는 늘 고통이 따라왔다.
경북형 거리두기 역시 시행 초기 '시기상조, 방역구멍, 방역불감증,…' 등 부정적 기류가 강했다. 하지만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정부 방역회의 때마다 끈질기게 경북형 거리두기를 건의했고, 현재 코로나19가 할퀸 지역 경제를 빠르게 치유해 나가고 있다. 지난달 전통시장 체감지수의 경우 경북은 44.9로 전달보다 9.2포인트 높아져 전국 평균(1.7포인트 상승)을 5배나 웃돌았다.
장관, 3선 국회의원, 국립대학 총장 등 거물급 인사들의 출자·출연기관 기관장 임명을 두고도 '자질' 시비가 일었다. 경북도 퇴직 공무원이 으레 꿰차는 자리인데 외부 인사가 오니 '밥그릇 불만'이 팽배했다. 지금은 중앙과의 소통, 국비 확보 등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이 강화됐다는 분석이다. 숨 고르기에 들어간 대구경북행정통합(메가시티)은 여당 대선 후보들이 "미래의 경쟁력은 메가시티에서 나온다"며 공약으로 내놓고 있다.
이렇듯 '상했다'고 치부된 경북도의 다양한 시도는 시행착오 속 '최고의 맛'을 찾아가고 있다. 만년 꼴찌 수준이던 정부합동평가에서 2년 연속 1위에 올랐으며 최근 국가균형위의 지역균형뉴딜 사업과 관련, 경북이 전국 선정 과제 42개 중 13개를 가져왔다. 인구 5%에 불과한 경북이 28%나 되는 사업을 따왔다.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는 끊임없이 재생되는 간을 독수리에게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으며 선구자의 헌사를 감당한다. 남은 1년 동안 경북도정은 어떤 변화를 시도하고 무슨 반발에 부딪힐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새바람 행복경북을 위해 경북도지사를 중심으로 구성원 모두가 하나 될 때 '새 시도와 제도'는 이상한 게 아닌 '상식'이 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맛보고 '상했다'고 내던진 '떠먹요'가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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