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기본’ 시리즈뿐인 이재명의 밑천

입력 2021-06-08 05:00:00 수정 2021-06-08 10:10:38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경기도지사.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경기도지사. 연합뉴스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대선 주자 지지도에서 여권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노벨상의 권위를 빌려 트레이드마크인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려다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 지사는 개발 경제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미국 MIT대 교수 부부의 보편 기본소득을 지지한다고 했으나,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에게 '책은 읽었나'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지사는 무차별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보다 빈곤 탈출이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집중 지원하는 자신의 '공정소득'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유승민 전 의원의 주장에 "배너지·뒤플로 교수 부부가 모든 국민에게 연간 100만 원 정도의 소액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윤 의원은 "배너지·뒤플로 교수는 선진국의 기본소득에 대해 이재명 지사와 정반대 입장"이라며 "알아서 치는 사기인가, 아전인수도 정도껏 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국내에 번역 소개된 그들의 저서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의 관련 내용을 소개했다. 요지는 가난한 나라의 경우 기본소득은 절대 빈곤 해결에 효과적일 수 있지만 일자리 감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인 선진국에서는 보편 기본소득이 일자리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진단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은 틀린 처방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 어떤 기준으로도 가난한 나라가 아니며, 현재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고용 악화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뒤플로 교수는 한국을 '콕 집어' 보편적 현금 지원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뒤플로 교수는 작년 11월 기획재정부가 주최한 '2020 경제발전 경험 공유사업(KSP) 성과 공유 콘퍼런스'에서 화상 기조연설 후 국내 언론과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은 어떤 사람을 언제 지원해 줄지 판단할 수 있고, 실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할 수도 있다"며 "보편적 기본소득의 단점은 많은 재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 지사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전체적으로 선진국이 맞지만 복지만큼은 규모나 질에서 후진국을 면치 못한다"며 기본소득이 해법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국가가 기본소득을 보장해 준다는 소리는 참으로 달콤하다. 하지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경구를 잊으면 안 된다. 기본소득은 세계적으로 일부 지역을 넘어 나라 전체를 대상으로 기본소득 실험을 해 본 예가 없다. 최악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을 강제한 결과 일자리가 사라져 소득 격차를 더 심화시킨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꼴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너무 모험적이다. 바꿔 말해 무모하다. 무모함은 이뿐만 아니다. 이 지사는 '기본대출' '기본주택'까지 내놓았다. 문제는 이렇듯 국민에게 주겠다고만 하면서 어떻게 벌어들일 것인가는 말을 아낀다. 가진 게 있어야 줄 것 아닌가? 가진 게 없는데 주려면 빚을 내는 수밖에 없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러다가 어떻게 될지는 그리스를 보면 안다.

국가의 부는 대부분 기업이 만들어낸다. 일자리 창출을 통해서다. 일자리가 늘어나면 '기본' 시리즈는 필요 없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해 식상하기까지 한 상식이다. 이재명에겐 이게 없다.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포퓰리스트'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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