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태 경북대 의대 교수(전 대구첨복재단 이사장)
에너지 정책이나 가덕도공항 건설 등 국책사업으로 인한 사회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국책사업을 결정하기 전에 정치적인 고려 못지않게 중장기적 관점에서 타당성과 경제성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숙성되지 않은 조급한 결정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어렵고 힘들게 쌓아온 우리 기술의 사장과 관련 산업계 전체의 퇴락을 야기한다.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이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에 나섰다고 한다. '검토해 보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입장도 보도됐다. 중요 국책사업이 지역의 민원 사업화된 느낌도 준다.
무병장수 시대를 맞아 선진국들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닌 의료산업이 차세대 성장동력임을 알고 이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는 과거 천재적인 과학자 개개인이 독립적으로 이끌던 연구 개발의 체계를 뛰어넘어 이제는 바이오와 IT, 재료공학 등 다학제 연구팀이 자유분방하게 융합할 수 있도록 한 구조적인 개선에 힘입은 바가 크다. 기초 연구부터 산업체까지 여러 분야의 융합 연구와 인공지능(AI)의 도입으로 실시간에 혁신적 개념들이 부가되고 실용화는 빨라졌고,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닌 성과가 탄생하는 것이다.
구미 선진국들의 성공은 전통 있는 대학 연구실이 벤처기업을 태동시키고 이들이 집적되고 융합되며 만든 바이오 공룡기업들이 이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연구 역량뿐 아니라 융합의 경험도 부족해 많은 연구비와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혁신적인 신약이나 기기 개발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의료산업 시장 점유율 2%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웃한 일본, 싱가포르, 중국 등은 이러한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국가가 산업체, 학교, 병원 및 연구소를 한 지역에 집적시킨 대단위 의료클러스터를 설립하고 지원해 단숨에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했다. 기초 연구를 하는 대학에서 산업체, 첨단 임상시험 병원을 갖춰 아이디어를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연구개발 플랫폼을 만들어 경쟁하겠다는 생각이다. 일본은 지진으로 피폐화된 고베에 클러스터를 만들어 의료산업의 메카가 되도록 지원했고, 싱가포르는 바이오 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사이언스 파크를, 중국은 상하이에 대단위 의료개발특구를 설립했다. 일본은 바다를 매립한 인공섬의 첨단단지에 고속열차를 연결했고 이화학연구소의 슈퍼컴퓨터센터와 유전자 치료 병원 건립 등 수조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우리나라도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입안돼 경쟁 끝에 충북 오송과 대구에 첨복단지가 설치됐다. 글로벌 수준의 의료 산업체가 없으나 정부에서 산학연과 의료기관 등을 집결시켜, 연구개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 성과다. 2013년 준공된 첨복단지는 연구 인력 채용과 첨단 설비 도입 후 이제 본격적인 연구개발 및 지원 업무를 시작했다. 개별 기업이 보유하기 어려운 기술 및 인프라 지원과 제품화를 위한 성능 평가와 임상시험에 이르기 까지 의료산업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두 첨복단지는 많은 예산이 투여된 대형 국가주도 의료클러스터로서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가 될 첨단의료산업의 선봉장이 돼야 한다. 그러나, 첨복단지가 세계적인 의료산업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산·학·연 전문가와 지원 기관이 집적할 수 있도록 대규모의 재정 및 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첨복단지를 우리나라가 추가적으로 설치하겠다는 것은 이를 지역에 산재한 농공산업단지 수준으로 하향화할 수 있는 포퓰리즘이고 공멸의 길이다. 일본도 한 곳에 국한돼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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