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웬만하면 중국영화와 일본영화는 거르는 편이다. '나를 따르라' 식의 지나친 중국 애국주의와 '나를 좀 봐주세요' 식의 일본 멜로는 이제 식상하다 못해 속까지 불편해진다. 1970~80년대 두 나라 영화인들이 보여준 그 묵직함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요즘은 못 볼 걸 본 것 같은 잔뇨감이 오래 남아 여간해서는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22일 개봉한 '소년시절의 너'(감독 증국상)는 주연배우들의 호연에 주제를 파고드는 집중력 있는 연출이 여느 중국영화 같지 않아 반가운 마음이 드는 영화다.
'소년시절의 너'는 학교 폭력을 소재로 입시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의 힘든 '10대 살이'를 그리고 있다. 가장 향기롭고, 달콤해야 할 10대가 겪는 쓰디쓴 사회 맛보기가 관객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2011년 중국 지방 소도시. 우등생인 첸니엔(주동우)은 늘 혼자다. 그나마 가까웠던 친구가 학교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투신하고, 친구들의 괴롭힘이 자신에게 돌아온다. 끔찍한 현실을 이기는 길은 오직 하나, 좋은 대학에 가는 길뿐이다. 수능시험만 잘 치면 된다. 그래서 주먹질도 발길질도 참아낸다.
베이(이양천새)는 양아치 소년이다. 뒷골목에서 혼자 살아가는 앵벌이다. 참지 못하는 성격에 늘 얻어맞고 다닌다. 어느 날 곤경에 처한 첸니엔을 구해주고, 첸니엔은 그에게 수능시험을 칠 때 까지 자신을 지켜달라고 부탁을 한다. 이제 둘은 힘들지만 외롭지 않다. 그러나 둘은 곧 큰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소녀와 소년은 헐벗은 맨발의 청춘이다. 첸니엔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어머니마저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다. 이제 혼자 살아가야 하고, 앞으로 어머니까지 떠안아야 한다. 유일한 희망은 명문대로 진학해 이 작은 동네를 떠나는 것뿐이다.
베이도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벼랑 끝 인생이다. 어느 날 연약한 소녀가 가슴 속에 날아든다. "넌 세상을 지켜, 난 너를 지킬게" 이제 삶의 의미가 생겼다.
'소년시절의 너'는 세상의 끝에서 기댈 곳 없는 아이들의 가냘프지만 간절한 마음이 잘 묻어나는 영화다.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는 선생님과 책임 떠넘기는 경찰 등 현실비판적인 요소로 출발하지만, 곧 소년과 소녀의 멜로로 선회한다. 둘의 절절하고 애틋한 로맨스는 통속의 사랑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외로운 영혼들의 서로 보듬기와 같은 것이다.
집단 괴롭힘으로 첸니엔의 머리카락이 뜯겨나가자 베이가 머리를 깎아주고, 자신도 삭발을 하는 장면은 상처받는 청춘들의 초상을 보는 듯해 가슴이 먹먹해 진다.
'소년시절의 너'는 사회고발적인 주제의식을 살리면서도 서정성을 더해 관객의 시선을 끝까지 붙잡아 맨다. 이야기의 흐름도 속도가 있고, 구성도 짜임새가 있다. 길거리 CCTV나 휴대폰 화면 등을 활용한 연출은 영리하고 재치가 있다.
여기에 배우들의 호소력 짙은 연기도 영화를 생동감 넘치게 한다. 특히 주동우는 실제 10대 소녀를 앉혀 놓은 듯 어린 첸니엔의 수난을 사실적으로 연기해 관객의 공감을 자아낸다. 촬영할 때 주동우는 27세였다.
주동우는 2010년 '산사나무 아래'를 통해 거장 장이모우 감독에게 발탁돼 중국 20대 청춘배우의 대표 아이콘이 됐고, 이후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17), '먼 훗날 우리'(2018) 등을 통해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중국 인기 아이돌그룹 티에프보이즈 멤버인 이양천새도 첫 스크린 데뷔지만 안정적인 연기를 펼친다.
감독 증국상은 배우로 출발해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등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중국의 신진 감독이다. 여류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여정평 촬영 감독의 감각적인 영상도 빼어나다. '첨밀밀'(1996)의 진가신 감독이 기획에 참여했다.
연출과 음악, 영상 등 두루 완성도가 높은 영화다. 물론 영화 말미 장황한 자막이 눈에 거슬렸지만, 중국정부의 검열을 비껴가려는 제작진의 애쓴 흔적으로, 애교로 봐줄만 하다. 대구에서는 지난해 7월 동성아트홀에서 개봉했고, 제93회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오르면서 22일 확대 재개봉했다. 135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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