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 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26번째 이야기 하회마을과 부용대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봉정사와 하회마을 그리고 유교경판, 모두 안동이 보유(?)하거나 안동에 있는 세계문화유산과 기록유산들이다. 안동과 같은 작은 지방 도시가 유네스코가 선정한 다섯 개 정도의 세계 유산을 자랑한다는 것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안동에는 세계문화유산 외에도 국보가 다섯 개, 보물이 43개나 있어, 말 그대로 대한민국 최고의 역사문화도시라는 명성에 손색이 없다.
'부용'(芙蓉)은 연꽃이다. 하회마을의 옛 이름은 부용촌(芙蓉村)이었다. 마을이 형성된 형상이 연꽃이 핀 모양을 연상케 했다. '북애'(北崖)라고도 불리던 마을 북쪽 강 건너 절벽이 '부용대'(芙蓉臺)가 된 것은 연꽃마을을 내려다보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낙동강이 휘돌아 감싸 안아 '하회(河回)마을'이라고 명명된 이 곳은 원래 부용대에서 바라보게 되면 연꽃이 활짝 피는 모양으로 보여서 오래 전부터 '부용마을'로 불렸다.
하회마을을 둘러보고 난 후 부용대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방금 둘러본 고택들을 한 눈에 넣어보는 것도 좋지만, 아예 하회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전경을 바라보는 것도 하회마을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부용대에서는 내려오면서 서애 류성룡이 지은 옥연정사와 서애의 맏형 류운룡의 겸암정사도 봐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요즘은 옥연정사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예전에는 부용대에서 하회마을로 건너갈 수가 있었다. 나룻배를 탈 수도 있었고 앤드루 왕자가 방문하게 되자 섶다리까지 설치해 놓았으나 지금은 섶다리로는 통행할 수 없도록 했다.

아주 오래된 중국 영화 중에 한중 수교 전에 수입 상영된 <부용진>이라는 영화가 있다. 마오쩌둥(毛泽东)시대의 아픈 기억인 문화대혁명을 소재로 다룬 영화로 문화대혁명 시대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 주요한 스토리다. 이 영화의 무대가 부용진이라는 마을인데 말 그대로 연꽃이 피는 마을이었다. 마오쩌둥 시대의 상처를 정면으로 다룬 이 영화의 배경이자 무대가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성 '왕촌'(王村)이라는 소수 민족 투자족(土家族)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 마을 역시 연꽃이 피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부용진(芙蓉鎭)이라고 불렸고 강가에는 늘 연꽃이 피어났다. 영화가 인기를 얻은 후 왕촌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연꽃마을 <부용진>으로 바뀌었다. 이 영화는 한중 수교(1992년)가 되기 전인 1989년 수입된 최초의 중국(중공)영화로 당국의 특별승인을 얻어 호암아트홀에서 대중에게 상연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회마을은 중국의 부용진을 연상시킨다. 부용진이 한 때 부족 국가를 이뤘던 투자족의 수도격이었다면 하회마을은 풍산 류(柳)씨들이 수백 년 동안 모여 살아 온 씨족마을이었다. 지금도 하회마을 주민의 70% 이상이 류씨 집안 사람들이라고 한다.
하회마을은 2010년 경주 양동마을과 더불어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오랜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증거로 예술성이 담긴 축제나 행사가 잘 보존됐다는 평가를 받았고 특히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인간과 문화유산이 잘 조화를 이루는 보편적인 사례라는 극찬도 받았다. 하회별신굿 놀이 등의 전통문화가 잘 보존돼있다는 점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회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하회마을 입구 하회장터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은 후 주차장에서 (무료)셔틀버스를 타거나, 하회마을 만송정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1.2km 걸어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하회마을 안으로는 마을 주민 차량이나 공무 외에는 차량 출입이 금지돼있다. 그러나 하회마을을 천천히 걷더라도 1시간 정도면 대충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한 규모이기 때문에 오솔길을 통해 걸어서 들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오솔길로 들어서서 걷다 보면 낙동강이 보이고 멀리 부용대도 나타난다.
지금 하회는 한창 봄이다. 오솔길을 따라 산길을 오르락 걷다 보면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들의 새 순이 순간 순간 올라오는 것을 볼 수도 있고 봉오리를 맺고 꽃망울 터뜨리기 시작하는 벚꽃 군락과 충효당과 양진당 마당의 벚꽃과 목련까지 다 만날 수 있다. 고택에 핀 꽃을 만나는 일은 도심에서 만나는 봄꽃보다 더 반가울 수밖에 없다. 봄마다 철마다 피는 꽃이라도 수백년 역사를 담고 있는 유서 깊은 고택의 봄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하회마을은 계절의 변화를 유감 없이 잘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은 마을이다. 봄이면 봄꽃, 여름이면 짙어진 녹음과 더불어 낙동강의 유량과 유속이 빨라지면서 '물돌이 마을'의 정취를 흠씬 느끼게 해주고, 가을에는 초가 지붕 위로 살포시 드러난 앙상한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홍시들이 한 폭의 동양화를 만들어준다. 하회마을의 겨울은 추울 듯 하지만 눈 내린 풍경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다.

하회마을에 갈 때는 아는 만큼 보인다.
마을을 둘러보는 코스는 몇 가지가 있겠지만 마을 중앙에 있는 양진당을 중심으로 한 기념비적인 몇몇 고택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하회를 다 봤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당수 고택들에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어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있어 실제로 관광객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고택은 제한돼있다는 점은 아쉽다.
일부 고택들은 아예 관광객들의 접근을 막겠다며 자동차로 골목 입구를 봉쇄한 볼썽사나운 풍경도 노출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회마을에서도 관광객들이 실제로 관람할 수 있는 고택은 '양진당'과 '충효당' '북촌댁'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양진당도 사랑 별채만 개방돼있다. 그나마 별채 마당에는 목련이 활짝 피어 다행이다.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 그래서 '서애종택'이라고 불리지만 서애가 살았던 집은 아니다. 지금의 충효당은 서애 사후 지은 집이라고 한다. 이 집의 당호를 '충효당'이라고 지은 것은 '충과 효 외에 달리 할 일은 없느니라'(忠孝之外無事業)이라는 서애가 임종 직전 자손들에게 한 당부에서 나왔다.
충효당에는 안동을 방문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있다. 충효당 앞에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심은 구상나무가 있었고, 그 옆에는 여왕 방문 20년 만에 하회마을을 다시 찾은 앤드루 왕자의 방문을 기념하는 기념 표식이 세워져 있었다. 충효당 입구에서는 매화가 소리 없이 지고 있었고, 안채 마당에서는 벚꽃이 아직 한창이었다.
한 두 주가 지나면 목련과 벚꽃 개나리와 진달래 등의 봄꽃들은 언제 핀 적이 있었느냐며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충효당과 양진당을 보고난 후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삼신당을 찾았다. 하회마을 삼신당은 수령이 600여년이 넘는 나무로 이 마을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곳이다. 화산 중턱의 상당(서낭당)과 중당(국신당)과 더불어 하당으로 불리면서 마을 사람들의 소망을 비는 삼당을 이루게 된다. 정월 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상당과 중당에서 지낸 후 다음 날 아침에 이 삼신당에서 제를 올린다. 하회별신굿놀이를 시작하는 곳도 이 삼신당이다.


하회마을이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취지와 어울리지 않게 마을 주민들이 지나치게 상업화에 나서 하회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의 불편과 원성을 사고 있다. 마을 주민의 차량이 수시로 마을 안쪽으로 들어와서 골목길을 휘젓고 다니는 풍경도 세계문화유산 지정 취지와 맞지 않았다.
하회마을 입구에서 만나는 가장 볼썽사나운 풍경이 국적 불명의 온갖 전동차와 호객 행위였다. 어느 동남아 관광지에서나 볼 법한 낯선 모습이다. 평온하게 세계문화유산을 찾아 나선 관광객들에게 수백 년 된 좁은 골목길을 마구 달리는 골프장 전동 카트와 주민들의 차량들은 이 마을이 세계문화유산인가를 의심하게 할 정도다. 심지어 관광객들이 타고 다니는 전동차가 수백 년 된 담장을 들이받는가 하면 다른 관광객들과 부딪쳐서 인명 사고를 내는 일도 수시로 벌어지고 있고 전동차와 전동차 및 주민 차량이 뒤엉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도 비일비재 하게 벌어진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오래 전에 등재된 중국 윈난성 '리장(麗江) 고성'과 산시성의 '핑야오(平遥) 고성을 몇 차례 가본 적이 있다. 고성 내에 수천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으면서 고성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있어서 그 곳에서는 자동차의 통행은 엄격하게 통제했다. 고성 내의 차량진입은 주민 차량에 한 해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일몰 후에만 그것도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했다. 중국도 세계문화유산에 자동차가 통행하는 것을 금지하는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유교 마을에 자동차와 전동차가 거리낌 없이 드나드는 풍경은 이해할 수 없다. 중국보다도 못한 문화 의식이라고 손가락질 당해도 어쩔 수 없다.
이 마을에 사는 후손들의 밥벌이를 위해 문화유산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문화재청이나 안동시 등이 '나몰라라'하고 뒷짐 지고 있는 것은 당국의 문화 의식 부재와 관리 부실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회마을을 찬찬히 둘러보는 데는 걸어서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전동차를 타고 관람할 정도로 드넓은 마을이 절대로 아니다.
부디 마을 주민의 차량도 일과 시간 중에는 절대로 마을 안으로 통행해서는 안 된다. 마을 입구에 공동 주차장에 세워두더라도 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그 정도의 불편은 감수할 수 있는 것이 세계문화유산마을의 자긍심을 갖고 있는 하회마을 주민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아닐까 한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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