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주범 조주빈 검거 1년 지났지만…디지털 성범죄 기승

입력 2021-03-18 18:26:15 수정 2021-03-18 21:25:57

대구 여성의 전화 "70%가 10·20대"…대부분 유포 두려워 조사 꺼려
피해자 대부분 '영상·사진' 삭제 요구…사건화 비율 10% 그쳐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세대, 언어 성폭력을 놀이로 인식해

디지털 성범죄는 일상 곳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17일 취재진이 한 랜덤채팅 어플을 다운 받아 10대 연기를 하며 20대 남성과 대화를 진행해본 결과 대화 시작 13분 만에
디지털 성범죄는 일상 곳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17일 취재진이 한 랜덤채팅 어플을 다운 받아 10대 연기를 하며 20대 남성과 대화를 진행해본 결과 대화 시작 13분 만에 '가슴(미드)을 보여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당시 대화방 화면을 이어붙인 캡처. 배주현 기자

#2019년 7월 A씨는 랜덤채팅 어플을 통해 알게 된 17세 여고생과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뒤 온라인 채팅방에서 프로필 사진을 협박도구로 삼아 30장의 '나체 사진'을 받아냈다. 하지만 피해자가 연락을 끊어버리자 '사진을 다시 보내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사진을 유포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그해 8월과 10월 A씨는 12세, 16세 여학생들에게도 같은 수법을 사용하면서 '나체 사진'을 갈취했다.

#지난해 3월 대구 북구에 사는 C씨는 휴대폰 게임을 하던 중 함께 채팅을 하게 된 9세 여아에게 '○○ 해봤어요?'라는 말을 건네며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그 뒤 C 씨는 아직 성적 가치관과 판단능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피해자에게 '나체 사진'과 '성기 사진' 7장을 촬영하도록 한 뒤 건네받았다.

디지털 성착취 'N번방 사태'의 주범 조주빈이 검거된 지 1년이 지났지만 디지털 성범죄는 일상에서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17일 대구 여성의 전화에 따르면 디지털 성폭력 상담을 요청한 피해자는 지난 2018년 36명, 2019년 39명, 지난해 53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상담 요청 피해자의 70%가 20대(19~29) 여성과 10대 여성이며, '사이버상 언어적 성폭력', '영상 유포 불안', '불법 촬영'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피해 사례는 늘어나는데도 가해자 처벌은 여전히 어렵다. 피해자 대부분이 유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록물 삭제'로 사건이 종료되기를 원해서다. 디지털 성범죄가 사건화로 연결되는 비율은 10%에 그친다.

대구 여성의 전화 관계자는 "디지털 성범죄는 사진과 영상이 유포되는 순간 막기 어렵다. 계속 재유포되기 때문에 대다수 피해자들이 괴로워한다"며 "게다가 사건화 과정에서 조사를 받다가 가족들에게 알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 탓에 선뜻 나서지도 못한다. 때문에 피해자들은 '사건화'보다는 '삭제'를 더 선호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막기 위한 시민 인식 개선도 쉽지 않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디지털 성범죄가 자극적인 가십으로 소비되면서 학생들의 인식마저 왜곡시키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아이들이 디지털 플랫폼에서 접하는 폭력 대부분이 이른바 '드립(농담)' 등 언어 성폭력이다. 게다가 언어적 성폭력을 흡사 놀이, 농담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가해와 피해가 모호해진다"며 "일상적 욕설에 대한 인지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잘못된 행동에 대한 이해와 피해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대구 여성의 전화 관계자는 "젊은 세대일수록 교육을 통해 잘못됨을 인지시켜야 하지만 코로나19로 대면 교육이 힘들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강의 자체가 형식적인 경우가 많았다"며 "학교 측과 협업에 예방 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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