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10분 멍TV'라는 EBS 프로그램이 있다. 멍하니 넋을 놓고 보게 되는 10분 짜리 영상이다. 초록의 숲길을 걷는 10분, 수조 속을 유영하는 거북이를 담은 10분, 불을 때는 시골 아궁이를 담은 10분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일몰 직전 광안대교를 담은 10분을 가장 좋아한다. 검은 실루엣의 광안대교가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해변의 정경 속에 붉은 석양을 품은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고 반짝이는 파도가 기분 좋은 리듬으로 철썩인다. 고요한 10분의 풍경은 생각보다 큰 평온을 준다. 무엇보다 '멍TV'라는 이름과 달리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 좋다. 하찮은 상념일지라도 사색의 10분이 주는 충만함은 꽤나 크다.
동영상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보듯 영상은 기본적으로 움직임을 전제한다. 영상의 홍수 시대, 우리가 접하는 영상의 대부분은 현란한 움직임을 담고 있다. 움직임이 격하고 현란할수록 우리는 그 영상을 '감각적'이라 부른다. 드라마도, 영화도, 유튜브 동영상조차도 감각적이지 않으면 외면 받는다.
사실 모든 미디어 콘텐츠는 장르에 맞는 문법을 가지고 있다. 극단적으로 TV 속 광고영상을 보라. 멈춤이라고는 없다. 광고 속 피자를 찍는 카메라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정지화면인 듯 보이는 장면조차 미세하게 상하좌우, 그리고 앞뒤로 카메라가 움직인다. 화면의 전환도 빠르다. 재생속도도 빨라졌다 느려졌다 현란하긴 마찬가지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사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소비자의 이목을 끌어야 하는 광고영상은 목적 달성을 위해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을 이용한 그만의 장르문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광고 스타일의 현란한 영상 문법은 이미 다른 영상 장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우리 역시 익숙해져 가고 있다. 문제는 시각적 본능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영상이 깊은 사고의 여지를 앗아가 버린다는 데 있다. 생각할 겨를 없이 눈이 반응하고,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한 때 바보상자라 불리며 마법의 움직임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TV는, 동영상 플랫폼이라 불리는 더 빠르고 현란한 움직임에 이미 오래 전 자리를 내어 주었다. 스마트폰이라는 더 작고 편리한 디바이스가 결합되면서 그 파괴력은 훨씬 더 강력해졌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듯 영상의 현란함이 생각을 잠식해 나가는 것이다.
영상은 움직임과 멈춤의 조합이다. 영상의 훌륭함을 결정짓는 요인은 움직임보다 멈춤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멈춤 속에 사색의 공간이 자리할 여지가 큰 까닭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따듯한 차 한 잔을 내어 멍TV 한 편을 틀어야겠다. 눈이 아닌 내 생각에 자극을 주어야겠다.
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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