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촉빠른 사람들

입력 2021-03-06 05:00:00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촉빠르다'는 형용사가 있다. 사람이 생기가 있고 재치가 빠르다는 뜻이다. 그런데 본디 뜻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가령 느낌이 예민하고 판단이 빠른 사람을 일컫거나 주위 눈치를 보지 않고 입바른 소리를 할 때 촉빠르다고 표현한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임직원들이 수도권 3기 신도시 예정지 중 하나인 광명시흥지구에 거액의 대출을 받아 12개 필지의 땅을 샀다가 적발돼 비난 여론이 거세다. 개괄하면 공공택지 조성·보상 업무를 맡은 공공기관 직원들이 개발 가능성 등 앞을 내다보고 촉빠르게 땅에 투자를 했다가 도덕성을 의심받고 궁지에 몰린 것이다.

이번 사건은 대통령이 철저한 전수조사를 엄명할 만큼 예민한 사안이다. 그런데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변창흠 장관이 언론에서 이들을 두둔하다 구설에 올랐다. 한마디로 '투기가 아니라 투자'라는 소리다. LH 직원들이 토지를 사들인 때는 대부분 변 장관이 LH 사장으로 몸담고 있던 시기다. 게다가 아직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장관이 실정이 이렇다며 미리 결론을 낸 것은 도대체 뭔가. 변 장관은 지난해 말 장관 취임 무렵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를 얻는 데서부터 시작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런 사태를 부르고도 어떻게 신뢰를 얻겠다는 건지 요령부득이다.

공직 일각에서 "공무원은 땅에 투자하면 안 되냐"는 불만까지 터져나오자 '투자와 투기도 구별 못 하는 가당찮은 소리'라는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한 푼이라도 보상금을 더 받아 내겠다고 묘목까지 심었다니 더 할 말이 없다. 인근 농협에서 거액의 대출까지 받아 사이좋게 땅을 샀다는 사실도 우연치곤 매우 괴이하고 미심쩍다.

어떤 조사 결과가 나오든 이번 사건에 연루된 LH 직원들은 스스로 '촉빠른 사람'이라고 자부할지 모른다. 언젠가는 이 지역이 개발될 것으로 보고 투자했다는 해명에서 확증편향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제 잇속을 챙기려 했다고 의심한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가도 샌다'는 속담대로다. 변명도 이치에 닿아야 통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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