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예술속 사투리
5) 영화속 사투리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곽경택 감독의 '친구'(2001)에서 선생님(김광규 분)이 준석(유오성 분)을 교탁으로 불러 뺨을 때릴 때 하는 말이다. '친구'는 조폭 두목을 아버지로 둔 준석과 장의사 아들 동수(장동건 분), 밀수업자 아들 중호(정운택 분), 모범적인 가정의 상택(서태화 분) 등 4명 친구의 우정과 엇갈린 운명을 그린 흥행작. 특히 사투리를 전면에 내세워 전국적으로 경상도 사투리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다.
1981년,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였다. 교실에서도 예외가 아니어 선생님들에게 매 맞고, 뺨맞고, 얼차려 받고, 팬티 내려 창피 당하는 일도 다반사였다.이 시대 아버지 직업이 자랑스러울 학생들이 한 반 60명 중에 몇 명이나 될까. '너 아버지 직업이 뭐냐?'는 질문은 그 자체가 모멸적이다.
이 대사에서 선생님의 속뜻은 뭘까? 정말 아버지의 직업이 궁금했을까? 힘든 아버지에게 부끄러운 아들인 것을 알라는 뜻일까? 아니면 너 같은 '꼴통' 때문에 선생님들이 이렇게 힘든데 너 아버지는 왜 코빼기도 안보이냐는 비난일까?
◆'마이 무따 아이가,고만 해라!'
희한하게도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에는 이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다. 사투리의 장점은 언어의 경제성과 상징성이다. '너 아버지 직업이 뭐니?'라고 표준어로 물었다면 정말 아버지 직업이 궁금해서 묻는 말이 된다. 그런데 '찰진' 경상도 악센트와 함께 사투리로 물으면 그 속에 많은 의미가 내포해 버린다.
특히 경상도 사투리는 의미의 압축력이 대단하다. 대구 사투리 '내나 카이'는 '내가 계속 얘기하는 말이 그 말인데, 왜 그 말뜻을 못 알아 듣는냐?'는 말이다. 이렇게 경상도 사투리는 장황한 설명 없이도 짧은 말 안에 여러 의미를 다 담아낸다.
성인이 된 동수가 칼에 찔러 죽을 때 '마이 무따 아니가. 고만 해라!'는 대사처럼 말이다. '여러 번 찔러 내가 죽을 정도가 됐으니 그만 찔러도 되겠다'는 뜻이다. '먹었다'는 일상어가 더하면서 끔찍한 살인이 '정감 어린'(?) 친구와의 친밀한 말로 바뀌는 효과가 일어난다. 어릴 때 둘도 없던 친구들이 어른이 되면서 서로 다른 운명의 수레바퀴에 실려 결국 파멸하고 마는 비정미가 다 담겨 있는 대사다.
'친구'는 이외 '내가 니 씨다바리가?', '니가 가라. 하와이', '마이 컸네. 동수', '친구끼리는 미안한 거 업따' 등 많은 명대사가 히트했다.
그런데 곽경택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부산이 무대지만, 경상도 사람들만 보는 것도 아니고, 사투리로만 대사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던 것이다. 제작진들의 반대에도 밀어 붙여 결국 사투리 영화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일까 DVD를 출시하면서 한국영화임에도 한국어 자막을 삽입했다. 경상도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친절하게 표준어 대사로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투박하지만 형재애를 그린 영화
경상도 사투리가 잘 쓰인 또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바로 안권태 감독의 '우리 형'(2004)이다. 원빈이 진한 경상도 사투리를 써가며 건들거리는 학생 연기를 해 눈길을 끈 영화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곽경택 감독의 '친구'가 오버랩되는 영화다. 안권태 감독이 '친구'의 조감독을 했고, 황기석 촬영감독이 '친구'를 찍었기 때문이다. '친구'에서 경상도 사투리의 흥행성을 보고 미남 배우 원빈을 기용해 사투리를 통해 극과 극 경상도 형제의 투박하지만 깊은 정을 그려냈다.
'우리 형'은 1990년대 후반 한 고등학교가 배경이다. 동생 종현(원빈 분)은 잘 생긴 얼굴에 거친 싸움꾼이고, 형 성현(신하균 분)은 약하고 소심한 모범생이다. 형제지만 둘은 물에 기름처럼 어긋나 있다. 나쁜 동생이 착한 형의 사랑을 알게 되지만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 영화도 '친구'처럼 모든 캐릭터가 경상도 사투리를 쏟아낸다. 특히 원빈은 머리를 빡빡 깎고 시종일관 거친 경상도 사투리와 비속어, 욕으로 터프함을 보여준다. "와? 뭘 보노? 떫나?", "니 뽕 맞았나?", "사람 배 쩨봤나?" 짧은 말에서 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낸다. 독 품은 풀떼기처럼 쏘아댄다.
'우리 형'에서 재미난 것은 시를 읊는 대목이다. 종현은 좋아하는 미령(이보영)을 위해 쓴 시 '네잎 클로바'를 낭독한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의 거친 잎에서 시가 나온다.
'너무 괴로워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세잎 클로바면 어떻습니까? 만약 당신이 네잎 클로바 였다면 이미 사람들이 당신의 허리를 잘라 갔을 것을. 당신에게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는 다고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이 장면은 종현의 설익은 연정을 어색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의 캐릭터와 맞지 않은 시를 어쭙잖은 표준어로 낭독하면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표준어와 사투리의 거리만큼,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어 우스꽝스럽게 되어버린 상황이다.
◆엄마의 진한 사투리 그리고 '사랑'
원빈은 경상도 사투리를 뱉으면서 열연했지만, 사투리가 들떠 있고, 찰진 느낌이 나지 않아 아쉬움을 주었다. '우리 형'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사투리 연기하는 배우가 엄마인 김해숙씨다.
"야들 엄맙니더" 사고를 친 두 아들 때문에 학교에 불려간다. 피해 학생 아버지가 고함을 지른다. "여자하고 말해 봐야 속 시끄럽고 아부지 오라카소!" 엄마는 "야들 아부지 엄습니다. 계좌번호 불러 주이소"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학교를 나오면서 두 아들에게 당부한다. "단디 들어라. 다음에도 누가 느그 둘 중에 하나라도 괴롭히면 같이 때리주라. 그기 형제다. 알긋나?" 남편을 잃고 골칫덩이 아들을 키우는 억척스런 경상도 엄마의 진면모를 강한 사투리로 잘 보여준다.

한국 영화에서 사투리를 주연급으로 등장시킨 것이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2003)이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대립을 사투리 퍼레이드로 펼친 코믹 사극이다.
일개 병사에서부터 김춘추, 연개소문, 의자왕 등 역사적인 인물들이 당시 지역의 사투리로 대결한다는 설정이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사극 속 사투리의 향연이 관객들에게 새로운 웃음을 선사했다. '황산벌'은 8년 후 후속작인 '평양성'(2011)까지 제작되며 한국 영화에서 사투리를 콘셉트로 제작된 유일무이한 영화로 남아 있다.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이 기사는 계명대학교와 교육부가 링크사업으로 지역사랑과 혁신을 위해 제작했습니다.
◆다시, 사투리 연재 순서
1.왜 다시, 사투리 인가
2.예술 속 사투리
3.사투리와 사람들
4.외국의 사투리 보존과 현황
5.대담
◆사투리 연재 자문단
김주영 소설가
안도현 시인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
김동욱 계명대학교 교수
백가흠 계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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