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설’, 나의 근원을 찾아서

입력 2021-02-09 11:27:53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우리의 고유명절인 '설'이 다가왔다. 한때 양력 1월 1일은 양력설, 음력 1월 1일은 음력설이라고 했고, 양력설은 신정(新正), 음력설은 구정(舊正)이라고 했다. '설'은 '구정'도 '민속의 날'도 아닌 우리의 고유명절 그 자체다. 그런데 아직도 '설'을 구정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고, '설'은 버려야 할 옛날 습관, 전근대적 유산, 비과학적인 의례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설'을 이 시대에 남은 마지막 미신이나 주술문화의 그림자로 보는 사람도 있다. '설'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근대는 과학과 합리의 시대다. 그런데 과학과 합리의 토대 위에 세워진 근대사회는 중심을 잃었다. 다양성으로 대변되는 근대사회는 '의미'와 '가치'의 중심을 상실했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이러한 근대사회는 막스 베버(Max Weber)가 사용한 탈주술화(disenchantment)란 개념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근대의 속성은 합리화에 있고, 고대와 중세의 비과학적이고 주술적인 세계로부터 탈출이 근대의 길이라고 보았다. 고대와 중세에 살던 이들은 우리 삶과 세계의 배후에는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근대의 사유엔 신비하고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그런 초월적 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초월적 힘이 설 자리는 없고 그 대신에 인간 이성과 과학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했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의 활동이 곧 하나님의 뜻이 되었다.

이와 같은 근대의 과학과 합리적 세계관은 과학의 발전과 번영을 낳았지만, 인류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고, '삶의 가치'를 놓쳤다. 이제 인류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공허하게 살아가고 있다. 인류는 더 이상 의미 있는 세계, 경이롭고 신비로운 우주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 인류가 살아가는 우주는 텅 비어 있는 거대한 빈 공간일 뿐이다. 그것이 생명이든, 산이든, 나무든, 하나님이든 과학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는 모든 것은 쓸모없다.

가장 소중한 생명체도 다양한 화학 원소들의 결합체이고, 생명 현상은 일련의 화학 반응이며, 그 모든 현상은 물리 법칙에 따를 뿐이다. 생명도 'DNA'디지털 정보의 구현이고, 모든 생명체는 DNA라는 소프트웨어를 내장한 하드웨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결국 인간도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로 작동하는 하나의 종일뿐이다. 이제 인간 생명에도 자연에도 우주에도 신성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현상이 일련의 화학적 반응이고, 우주가 가스 덩어리라면 그 속에는 의미와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C. S. 루이스(C. S. Lewis)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세계를 알아보는 눈이 필요하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 관계, 세계를 의미 있고 경이로운 곳으로 알아볼 때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신비를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이 물체이고, 하늘의 별이 가스 덩어리에 불과한 사람에게는 자신도 결국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대의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도 '자연적 형태의 다양성과 복잡성에 경이로움'을 나타냈다. 그렇다. 우리의 생명과 자연과 우주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경이를 발견할 수 없다면 우리 삶은 공허하고, 무의미할 것이다.

우리의 고유명절 '설'은 만남이다. 생명을 주신 부모님과 만남이고, 나를 만든 세계와의 만남이다. 이 근원과의 만남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보자.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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