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대한민국은 기생충 열풍이었다. 한국의 감독이 우리말 영화로 아카데미를 석권하던 장면은 보고 있으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봉준호 감독이 대구 남구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전학을 갔다고 해서 지역에서도 꽤나 화제였었다. 들뜬 분위기 속에 '대구의 아들' 봉준호를 기념하기 위해 동상을 세우자, 생가터를 복원하자 등 수많은 계획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고, 의미 없다" 싶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초등학생 때 기억 말고는 아무런 정서적 연고가 없는 그에게 대구의 아이덴티티를 기대하기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
몸도 마음도 이미 떠나버린 봉준호를 대체할 수 있는 실현가능한 방법이 있다. 첫째, 차근차근 포스트 봉준호를 기르는 것이다. 영화 관련 학과가 전무한 대구에서도 체계적으로 영화를 배울 수 있는 전문과정이 있다.
작년에 2기생을 배출한 대구영화학교(Daegu Film School)가 그곳이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가 매년 영화진흥위원회의 공모사업을 통해 예산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2019년에 배출한 1기생들은 졸업하자마자 7편의 단편을 만들었고, 2편의 장편 제작에 참여했다.
단돈 200만원으로 만든 졸업수료작 중 하나인 '다섯 식구'는 전북독립영화제 특별언급, 제주혼듸독립영화제 경쟁 등 큰 성과를 내기도 했다. 대구에 반짝이는 재능이 없다는 것은 푸념일 뿐, 실제로는 수많은 재능들이 발굴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다 지치면 서울로 떠나는 것이다.
운영성과가 좋아 공모사업에서 항상 높은 점수를 받고는 있지만 점점 치열해지는 공모 경쟁 때문에 늘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매년 대구만 혜택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대구영화학교 중 신규인력 양성 부분의 1년 운영예산은 5천만원 정도이다. 그간 구축한 인프라와 인적네트워크가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도 운영이 가능했다. 매년 공모선정 여부에 마음 졸일 필요 없이 최소한의 예산이 안정적으로 확보된다면 포스트 봉준호를 충분히 길러낼 수 있다.
둘째, 지역감독을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가와세 나오미라는 세계적인 거장감독이 있다. 칸영화제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이 여성감독은 특이하게도 자국의 영화중심 도쿄가 아닌 고향 나라현에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모든 영화 관련 자원들이 서울에 집중된 상황에서 가와세 나오미처럼 '세계적인 로컬감독'을 길러낼 수 있을까?
운이 좋게도 대구는 가능하다. 장편 '수성못'을 연출하고 대구에서 차기작을 준비 중인 유지영 감독, 작년에 지역을 배경으로 장편 촬영을 마친 김현정 감독 등은 전국적으로도 인정받는 대구의 자랑이다. 이들에 대한 제작투자는 당장이라도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칸과 베를린 등에서 충분히 겨룰 수 있는 이미 검증된 인재들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만이 포스트 봉준호를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대구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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