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윤혜란(수필가) 씨 모친 故 김차환 씨

입력 2021-02-07 15:30:00 수정 2021-02-08 09:24:57

친정집 들렀을 때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셨죠
혼자 계신 엄마의 뼈저린 외로움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1971년 윤혜란 씨의 결혼식에서 모친 김차환(신부 오른쪽) 씨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71년 윤혜란 씨의 결혼식에서 모친 김차환(신부 오른쪽) 씨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돌아가신 엄마와 마주하고 있다. 지금 내 나이 74세, 앞에 계신 엄마도 74세이다. 단정하신 엄마의 비녀 쪽머리는 약간 희끗희끗하다. 내 머리카락은 이미 빠져 듬성듬성하고 서리가 내렸다. 누가 엄마고 딸인지 모르겠다. 눈이 침침하고 볼살이 늘어진 늙고 의기소침한 나를 보고 엄마는 손을 붙들고 다정스럽게 쓰다듬는다.

"너도 늙었구나!"

순간 사막보다 더 비쩍 마른 내 눈물샘에서 철철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제도, 그저께도, 또 그저께도, 잠 안 오는 새벽녘이면 언제나 가슴에 맴돌던 말을 한다.

"엄마 미안해, 잘못했어, 엄마한테 잘못한 게 너무 많아."

어느 해 겨울 아이를 대구에서 바쁘게 키우다 김천에 있는 친정집에 잠깐 들렸을 때 대문 앞 양지쪽에 쪼그리고 앉은 늙은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내가 올까 봐 기다린다고 하셨다. 추운 날 하염없는 기다림으로 쪼그리고 앉아 계셨다니, 그때는 몰랐다. 혼자 계신 엄마의 뼈저린 외로움을,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는 말을 못 하는 마음을……. 그때는 매번 하는 잔소리처럼 건성으로 들었다.

요즈음 코로나에 갇혀 온종일 방안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나는 자식들이 그립고, 그립다. 그러나 그뿐 전화도 못 한다. 마음속으로만 부른다. 보고 싶어도 참는다. 비로소 나는 깨닫는다. 엄마는 얼마나 기다렸을까? 얼마나 자식 이름을 부르고 싶었을까? 배고픔보다 더 큰 외로움이란 것을 알았다. 아! 엄마, 미안하고 미안해. 엄마의 말 하지 않는 그 눈빛이 이 뜻이었구나! 얼마나 더 나이 먹으면 겪지 않아도 엄마의 마음을 알까요? 엄마는 모든 게 다 괜찮은 줄 알았어요. 다 씩씩하신 줄 알았어요. 말씀을 안 하고 참고 계신 줄 몰랐어요.

돌아가시기 얼마 전 치매기가 있는 엄마는 우리 집에 오셨다. 그 때 난 수술 후 퇴원을 막 했을 때이다. 보고 싶은 딸을 보고 '언니야!' 하며 웃으셨다. 딸의 살림을 도와주시고 싶어 마루를 닦으셨다. 행주였다. 방에 들어가신 엄마의 큰 소리가 났다. "야, 야!" "야, 야!"

얼른 뛰어갔다. 엄마는 반색하시며

"야야, 방문이 없어졌어. 누가 나를 가두었나 봐."

그때 중증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외손녀, 외손자를 사랑으로 보듬어 길러주셨던 자상하고 옹골찬 엄마였는데 그리움과 외로움이 엄마를 상하게 했나 봐요. 통계에서도 배고파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은 몇 안 되지만, 외로워서, 고독해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은 허다하다.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1등이다. '효'의 나라라는 말이 무색하다. 나이에 따라 병도 깊어지지만, 그 외로움이, 햇볕 쬐는 기다림이, 지금 집에서 뱅 뱅 도는 나에게 반복되는 것 같다. 정호승의 시에서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했다.

그리운 엄마, 다음 생에선 외로우면 산처럼, 바람처럼 놀러 오세요. 그리고 어느 날의 엄마 집에서처럼 온 방을 가득 메운 엄마 친구분들이 누워 계시다 딸이 온 것을 본 할머니들이 모두 부스스 일어났지요. 또래끼리 외로움을 나누고, 마음도 나누고, 음식도 나누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자식은 다, 그런 거야' 하고 참지 마세요. 엄마 딸도 그렇게 살게요. 살아간다는 것은 모두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래요.

이제 사진 속에서만 뵐 수 있는 엄마께 다시 한번 용서를 빕니다. 같이 할게요. 같이 갈게요. 같이 웃을게요.

언제나 마음속에 같이 사는 그리운 엄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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