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식 경북도교육감
이번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중대재해처벌법'에 학교장 처벌이 포함돼 일선 학교 현장에서 교육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기업을 대상으로 출발한 이 법에 교육기관인 학교를 포함한 것은 입법 취지는 물론 일반적인 법 감정과도 많이 벗어난다. 영리를 전제로 하는 기업과 전인적 성장을 전제로 한 총체적 교육기관을 어찌 같은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학교장에게는 교육 책임자로서의 역할과 시설 관리자로서의 역할이 함께 주어져 있다.
그러나 이 법의 통과로 인해 교육자로서의 역할은 축소되고 시설 관리에만 치중할 위기에 놓여 있다.
학교는 이미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교육시설 등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법률' '산업안전보건법' 등 안전에 관한 법이 몇 겹으로 적용되고 있다. 더욱이 학교장은 학교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채용과 시설 투자를 위한 실질적인 예산권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기업의 최고 경영자나 사업주에게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실제 결정권이 없는 학교장에게 같은 무게로 차별 없이 적용하는 것은 법에 대한 과잉 해석이라고 본다.
심히 우려되는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처벌 수위의 하한선(징역 1년)을 정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형법의 적용 관례에 비춰 보더라도, 일반적으로 처벌의 하한선은 음주운전 사망 사고나 마약과 같은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인 범죄행위의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심지어 운전 중 사망 사고를 낸 운전자에게도 업무상 과실치사로 인정돼 처벌의 상한선만 있지, 하한선은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실제로 구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반적인 법의 적용이 이러함에도, 학교 안에서 예측할 수 없이 일어날 수 있는 과실의 책임을 포괄적으로 학교장에게 부과해 징역형에 처하게 하는 것은 형법 정신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법의 모법인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과 비교해도 매우 가혹하다.
당연히 근로자의 생명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의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한다.
누구도 이러한 법 취지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이 곧 법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법 제정으로 처벌을 강화하기에 앞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기업과 국가적인 투자가 우선이다. 그리고 좋은 명분에 기초한 법일수록 완벽한 기준을 추구해 현실과의 괴리가 커지기 쉽다.
이 법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학교장은 재임 동안에 구태여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설 사업을 벌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학교는 꼭 필요한 시설 투자를 하지 않아 점점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비교육적인 시설이 되어갈 것이다. '말년 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마저도 피한다'는 몸사림의 논리가 어딘들 예외일 수 있겠는가.
중대 재해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와 공중이용시설에서 발생한 '중대시민재해'로 나뉜다. 애초 공중이용시설에 포함됐던 학교는 학교시설을 대여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입법 과정에서 제외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중대산업재해'에서도 제외돼야 한다.
평생 교육에 헌신해 온 학교장에게 총체적 책임을 물어 교도소 담장 위를 걷게 하는 것은 법의 취지와도, 그리고 인륜적 가치에도 반하는 것이다.
향후 경북교육청은 하위 법령(시행령, 시행규칙)에 학교를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교육기관의 책임은 최소화하는 구체적인 조문을 넣어 학교장으로 하여금 교육 본연의 업무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를 위해 교육부, 교육감협의회와 유기적으로 협의하여 바람직한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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