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상화 시인의 귀한 선물

입력 2020-12-04 05:00:00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시인 이상화는 소설가 빙허(憑虛) 현진건과 함께 대구가 낳은 근대문학의 별이다. 둘은 공통점이 많다. 중구에서 태어난 두 사람은 가난과 병마에 찌들어도 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끝내 지켰고 우리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걸작들을 다수 남겼다. 빙허가 1년 먼저 태어났지만 타계일이 같은 해 같은 날(1943년 4월 25일)인 것도 공교롭다.

상화(尙火)의 시는 그 자체가 독립운동이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독립을 해야 진정한 봄이 온다는 저항의식을 이처럼 아름답고도 결연한 시어(詩語)로 표현해낸 작품이 또 있을까. '빼앗긴 들'의 실제 배경이 수성못 북쪽 들판이라는 점이 대구 사람으로서 더 감회롭다. 상화는 추억 어린 대구의 들판을 생각하며 진정한 봄(독립)을 맞아 새순과 꽃들의 향연을 즐길 날이 오기를 고대했을 것이다. 그는 현실에서의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1919년 대구 3·1운동 거사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고 독립운동 가담 사실이 드러나 1928년과 1936년 대구경찰서에 두 번 구금돼 고초를 겪었다.

30대 초반의 상화가 동년배 민족 운동가들과 두터운 교분을 가졌음을 확인해 주는 미술품이 최근 세상에 공개됐다. '금강산 구곡담 시'가 쓰여진 10폭짜리 병풍이다. 대구 출신의 대표적 서예가 죽농(竹農) 서동균이 상화의 부탁을 받고 행초서로 쓴 병풍인데, 상화는 이를 포해(抱海) 김정규에게 선물했다. 합천 출신인 김정규는 대구에서 항일 운동을 한 민족 지사다. 상화와 죽농, 포해 등 30대 초반의 젊은 피는 비록 나라를 빼앗겼지만 아름답고 의연한 우리 산하에서 민족정신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명산 금강산은 그 상징적 장소로 손색이 없었다.

구곡담 시 병풍은 김정규 선생의 셋째 아들 종해(83) 씨가 3일 대구시에 기증함으로써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병풍은 근대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및 문화예술인들의 서사(敍事)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중요 유산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금액으로 가치를 환산하기 어려웠을 텐데 병풍을 기꺼이 대구시에 기증한 김 씨에게 대구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뜻을 전한다. 소중한 유산이 대구에 안착할 수 있도록 창구 및 중개 역할을 한 대구시문화예술아카이브 팀도 격려를 받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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