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무엇을 위한 공수처인가

입력 2020-11-23 05:00:00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 3차 회의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 3차 회의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에 여당이 집착하고 있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의 활동 종료를 기다렸다는 듯 하루도 안 돼 공수처법 단독 개정을 공언했다. 시한까지 못 박았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반대하겠다지만 애처롭다.

정부·여당은 공수처 설치를 검찰 개혁이라 이름했다.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여당 원내대표 시절 "검찰 권력의 분산을 이루는 것이 공수처의 핵심 목표"라 규정했다. 하지만 공수처가 정말 검찰 개혁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다. 공수처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18·19대 대선 공약 사항이었다. 문제는 검찰이 '죽어 가는 권력' 혹은 '죽은 권력'을 탈탈 털 때 검찰 개혁은 정권의 입에 오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공수처 설치를 서두른 적도 없다. 조국 사태를 시작으로 검찰의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자 '검찰 개혁'이 회자됐다. 공수처의 목적에 의문을 갖는 이유다.

현 정권 들어 청와대발 부패, 부정선거, 권력남용에서 비롯된 비리 사건은 끊임없이 터졌다. 윤석열의 검찰은 이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깨끗한 권력이었다면, 검찰이 수사하지 않았더라면 검찰 개혁이란 말도 안 나왔을 터다. 검찰은 지금도 월성원전 폐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건 등을 수사 중이다.

검찰의 수사 의지가 강할수록 여당이 검찰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은 역설적이다. 월성원전 수사는 '정치 수사'라고 맹폭하고,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건에 대해서는 '금융 사기 사건에 불과하다'고 가이드라인을 긋는다. 신라젠 수사를 한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아예 해체해 버렸다. '정치적 수사'인가, '금융 사기 사건에 불과한가'는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 드러날 일이다. 떳떳하다면 검찰 수사를 비난하기보다는 '법대로 수사'를 촉구하고, 응원하는 것이 마땅하다.

가뜩이나 조국·추미애 두 전·현직 법무부장관 아래 검찰은 초토화됐다. 그 대장 격인 검찰총장을 두고 '식물 총장'이란 말이 나온다. 이 정부 들어 검찰의 후퇴는 끝이 없다. 공수처 설치와 수사권 분리를 받아들였다. 장관 인사권 행사를 통한 총장 측근 좌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남용, 총장 수사지휘권 배제에 최근 감찰 논란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 장관의 정치권력에 통째로 휘둘리는 신세다.

그러고도 모자라 공수처를 내세운다. 공수처는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언제든지 가져다 뭉갤 수 있다. 판·검사 사찰을 통해 수사와 재판을 좌지우지할 우려도 나온다. 검찰의 권한을 나눈다면서 검찰보다 더한 권한을 준다. 이런 공수처는 민주주의 국가에선 유례가 없다.

이런 공수처법에 야당은 독재 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그때 여당은 "야당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공수처장이 될 수 없으니 공수처 설치에 동의하라"고 했다. 야당 반발을 비토권으로 달랬다. 실제로 법 제6조 5항은 추천위원 7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명시했다. 야당 추천위원이 2명이니 여·야가 합의하지 않은 인사가 처장이 되기는 사실상 어렵다. 스스로 비토권을 주며 법 제정에 성공한 여당이 이젠 비토권을 없애겠다고 한다.

이런 공수처가 등장하면 사법부 전체가 정치권력의 직접적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된다. 검찰을 길들이고 나아가 대통령이 좌우할 공수처에 검찰에 우선하는 수사권을 주겠다는 이 정권의 권력욕은 끝이 안 보인다. 인도의 지성 오쇼 라즈니쉬는 "권력욕은 인간이 범한 가장 큰 범죄 중 하나"라 했다. 이쯤 되면 무엇을 위한 공수처인지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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