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일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대구행복페이' 발행 금액 3천억원이 10월 초 소진(消盡)되었다. 행정안전부는 내년도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규모를 9조원에서 15조원으로 확대하고 할인요율 10%를 유지하도록 국비 지원을 늘릴 계획이다. 대구시도 내년도 대구행복페이 발행 규모를 1조원으로 상향할 예정이다.(2020년 10월 21일 자 매일신문 기사)
대구행복페이는 지역화폐로 불리지만 화폐가 아니다. 지역화폐에는 일반적인 구매력이 없다.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에 제한이 있다. 지역화폐는 지불 수단으로서의 기능도 제한적이다. 지역화폐로 공과금이나 세금을 납부할 수 없다. 지역화폐를 통해 가치를 저장하거나 증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예금을 할 수 없으며 주식이나 채권을 매입하지 못한다. 지역화폐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발행하는 상품권이다. 대구행복페이는 대구시가 발행하는 상품권이다. 대구행복페이는 대구시에 위치한 가게에서 사용이 가능하므로 일반적인 상품권에 비해 사용처가 많을 뿐이다.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것은 주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과 같다. 지역화폐 발행액이 증가할수록 더 많은 세금이 투입된다. 현행 지역화폐는 주민들이 100원을 지불하고 110원에 해당하는 상품권을 받는 구조이다. 100원을 지불하고 110원의 소비를 할 수 있으니 주민들에게 10원의 이득이 발생한다. 10원은 세금으로 보전(補塡)된다. 보조금을 현금이 아닌 상품권으로 지급하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더 크다. 현금 100원을 지급하면 20~30원은 지출되지 않는다. 저축 때문이다. 또한 70~80원의 지출 중 일부는 다른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상품권 100원을 지급하면 그 지역에서 100원이 지출된다. 지출이 더 크면 생산과 일자리가 더 크게 증가한다.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는 지자체가 기대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 주민들이 지역화폐를 구입하는 이유는 10% 더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10%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 현금 지출을 상품권 사용으로 대체한다. 지자체가 지역화폐 110원을 발행할 경우 순수한 소비 증가는 10원이다. 110원이 아니다.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는 차별적이다. 모든 업종의 매출이 증가하지는 않는다. 지역화폐로 인해 매출이 증가하는 업종이 있지만 오히려 매출이 감소하는 업종도 있다. 대체로 지역화폐는 생필품을 판매하는 중소형 매장에서 사용된다. 이에 따라 사치품이나 대형 매장의 매출은 감소한다. 이러한 업종에서는 지역화폐로 인해 손실이 발생한다.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는 상호 약탈적이다.
지역화폐는 다른 지역을 가난하게 만드는 근린궁핍화(beggar thy neighbour) 정책이다. 근린궁핍화 정책의 원래 의미는 다른 나라의 경제를 희생시켜서 자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줄이고 자국의 수출을 늘려서 생산, 소비, 일자리를 증가시키는 것이 이 정책의 핵심이다.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목적도 이와 유사하다. A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목적은 A지자체 주민들이 B지자체에서의 소비를 줄이고 A지자체에서의 소비를 증가시키게 하는 것이다. 이를 소비 전환이라고 한다. 지역화폐는 소비 전환을 기대하는 정책이다. 만약, 많은 지자체가 계속해서 지역화폐를 발행한다면 우리 경제는 지역별로 블록(bloc)화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장의 크기가 작아지고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가 사라진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지역 간 교역이 크게 위축되었다. 내년에는 더 큰 금액의 지역화폐가 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화폐는 국가 단위의 시장을 지자체 단위로 분할함으로써 나라 전체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 지역화폐는 상품권 형태로 지급되는 보조금이다. 보조금의 재원(財源)은 세금이다. 경제학자들은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다고 말한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에게 공짜 점심을 약속하고 표를 얻는다. 지역화폐는 공짜가 아니다. 지역화폐는 이자율이 10%인 고리(高利)의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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