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이준범(JB농막 대표) 씨 부친 이윤호 씨

입력 2020-10-25 15:12:32 수정 2020-12-10 11:22:22

1973년 등교를 하던 길에 찍은 가족사진. (윗줄 왼쪽부터 누나, 막내동생, 어머니, 형, 이준범 씨, 아버지 이윤호 씨, 아랫줄 가운데 여동생.) 가족제공.
1973년 등교를 하던 길에 찍은 가족사진. (윗줄 왼쪽부터 누나, 막내동생, 어머니, 형, 이준범 씨, 아버지 이윤호 씨, 아랫줄 가운데 여동생.) 가족제공.

2018년 아버지가 떠난 그 한 해는 유난히 길게 느껴지고 가슴 시린 아픔이 많았다.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건 이별인 것 같다. 연인과 헤어짐도 가슴이 아프겠지만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을 겪어보니 이보다 더 아픈 이별은 없는 것 같다.

2018년 1월 초 아버지는 감기 증상이 보이셔서 병원 진료를 받던 중 폐렴 진단을 받으셨다. 아버지는 종합병원에 입원하셔서 치료를 받으시다 소생의 희망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공포감과 슬픔이 밀려오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롭고 고통스러운 슬픈 이별을 준비하며 가족들을 부르고 임종을 준비했다. 한 번의 고비를 넘기셨지만 끝내 이별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아버지는 행복하고 즐거움보다는 병고를 많이 겪으셨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오직 자식 잘되기만을 기대하며 정신력 하나로 살아오신 분이다. 다섯 자식은 그 은혜에 조금도 보답하지 못하고 이렇게 허망하게 보냈으니 이제는 가슴만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상에 많은 슬픔이 있겠지만 가족을 잃는 슬픔에 비길 수가 있을까? 아버지와의 이별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분향소가 꾸며지고 가족과 지인들의 문상으로 애도할수록 아버지께 잘 해드리지 못한 일들만 떠오르고 감히 고개를 들 수가 없고 한없이 부끄러웠다.

오래오래 사실 것 같았고 늘 그 자리에 계실 줄 알았어요. 보고 싶어요. 아버지. 한순간에 허망하게 가시고 나니 나의 어리석음에 탄식합니다.

2008년 3월 1일 이윤호(오른쪽) 씨 칠순잔치 사진. 가족제공.
2008년 3월 1일 이윤호(오른쪽) 씨 칠순잔치 사진. 가족제공.

아버지께서 가장 행복해하시던 때가 우리 형제들 결혼시키고 새 식구들이 늘어 날 때인 것 같고 막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인 것 같다.

막내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서울에 있는 의과대학에 합격했고, 시골 전체가 기뻐하며 축하가 이어졌었죠. 현수막까지 걸렸었다.

막내는 형제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늦둥이에 집안 형편이 썩 좋지가 않다보니, 아버지는 공부 말고는 물려줄 재산이 없다고 하셨다. 막내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시킨 후 대구에서 재수를 시켰다. 막내는 공부하는 게 제일 재미가 있다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 당시 우리 집 형편으로는 고등학교 시키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막내의 꿈은 자꾸 커져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다. 형제들은 반대했죠. 아버지 힘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한 학기를 다니더니 또다시 재수생의 길로 들어섰다. 몇 달간의 고시원 생활을 거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린 할 말을 잃었다. 막내는 그간의 맘고생과 경제적인 어려움에 몸이 쇠약해져 병이 날 정도였다. 만약에 원하는 대학에 못 가고 낙방을 했다면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갔을 것 같다.

2008년 3월 1일 이윤호(앞줄 오른쪽 네번째) 씨 칠순잔치에서 찍은 가족 사진. 가족제공.
2008년 3월 1일 이윤호(앞줄 오른쪽 네번째) 씨 칠순잔치에서 찍은 가족 사진. 가족제공.

흔히 나이가 나보다 어리다고 그래서 생각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는 어린 동생을 무시해 버리곤 했다. 좋은 대학이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꿈마저 우리가 결정하는 오류를 범할 뿐 했으니까.형으로서 아주 부끄러웠다.

우리 아버지는 젊은 시절 불의의 사고로 한쪽 팔을 잃었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아오신 분이다. 특히 우리 자식들을 지지해주셨다. 그렇기에 막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던 아버지가 더는 계시지 않다는 생각에 그리움이 커진다. 이제는 한 분 남은 어머니를 잘 모시며 아버지의 그리움을 달래본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을 겪고 있는 어리석은 아들이 아버지가 하늘에서 평안을 누리시길 소원합니다.

아버지(이윤호)를 사랑하는 아들 이준범(JB농막 대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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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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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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