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생활문화] 포청천…“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입력 2020-10-19 14:30:00 수정 2020-10-19 19:29:59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중국 포공사에 있는 포청천 동상
중국 포공사에 있는 포청천 동상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포청천, 정직과 정의의 대명사


중국 허난성 성도인 정저우(鄭州) 동쪽으로 2시간 거리에 중국 7대 역사 고도로 꼽히는 카이펑(開封개봉)이 자리한다. 북송(960~1127여진족 금나라에 쫓겨 남쪽 항저우로 천도하기 전 송나라)의 수도로 궁궐터 용대(龍臺) 등이 남아 역사 도시로서 위용을 뽐낸다. 인공 호수 포공호 물가에 '포공'을 기리는 사당 포공사(包公司)가 우뚝 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포공사
포공사

포공은 송나라 4대 황제 인종 시대 추상같은 청백리 포증(包拯)을 가리킨다. KBS가 1994년 방영한 35부작 대만 드라마 '판관 포청천'의 주인공이다. 포증을 왜 포청천이라 부를까? 사당 안으로 들어가 그의 동상 위에 큼직하게 걸린 문구를 보면 말없이 이유가 들린다. 정대광명(正大光明정직하고 분명하다). 포증은 한 치의 사사로운 감정 없이 황제 측근 같은 권력자들의 부정부패를 엄격히 처벌하고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줬다. 백성들이 '증'이란 이름 대신 푸른 하늘처럼 맑은 사람이라는 '청천'을 붙여 포청천(包淸天)으로 부르며 칭송한 이유다.

함무라비 법전이 발굴된 이란 수사 시타델
함무라비 법전이 발굴된 이란 수사 시타델

◆함무라비 왕, 정의 실현 위해 법 제정


포청천이 정의를 실행하던 때로부터 400여 년 전인 651년 아랍 이슬람 세력의 침공으로 이란 땅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한다. 살아남은 황족들이 대거 중국으로 망명해 작위를 받고 페르시아 문명을 중국에 심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서울 테헤란로처럼 서울로가 자리한다. 여기서 멀지 않은 남쪽 이란 국립박물관에 고대 이란 유물 사이로 낯익은 돌비석 하나가 반겨준다. 함무라비 법전. 생김이 아무래도 이상해 슬그머니 만져보니 속이 비어 텅텅 소리 나는 복제품이다.

복제품 함무라비 법전, 이란 테헤란 국립 박물관
복제품 함무라비 법전, 이란 테헤란 국립 박물관

이란 땅 수사에서 1901년 출토된 진품을 프랑스 발굴팀이 파리 루브르박물관으로 가져간 탓이다. 법전은 바빌로니아 왕국 함무라비왕(재위 B.C. 1790~1750)이 만들었다. 시카고 대학 하퍼 박사가 1904년 펴낸 '바빌론왕 함무라비 법전'(1904년) 서문을 펼쳐보자.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사악함을 물리치고 정의가 온 나라에 퍼지도록, 마르두크 신의 가호 아래 백성들의 복지와 법치, 정의를 확립하기 위해 법을 만든다'는 취지에 눈이 번쩍 뜨인다. 1천 년 전 포청천, 3천700년 전 함무라비왕 때 시대정신도 정의와 법치였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함부라비 법전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함부라비 법전

◆증언 거부 300여 번, 거짓말 27번, 비위 행위 13명


SBS는 9월 3일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부인 정경심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형사소송법 148조를 따르겠다"는 답변만 300여 차례 반복했다고 보도했다. 형사소송법 148조는 재판에서 자신이나 가족에 불리할 경우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모든 것을 법정에서 밝히겠다고 하더니 증언을 거부한 것이어서 애초 거짓을 말한 셈이다.


조선일보는 9월 30일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아들 서모 일병의 휴가 의혹 사건에 대해 27번이나 국회 대정부질문 등에서 거짓을 말했다고 보도했다. 진중권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패한 곳이 청와대. 기소된 청와대 인사 10명, 수사 중인 인사 3명'이라며 '언제 이런 적이 있었던가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패한 집단이 개혁하겠다고 칼을 들었으니,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죠'라며 문재인 청와대를 부패 집단으로 몰아세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악당 처치, 나훈아의 외침은?


'삶이 가치가 없는 곳에서 때로는 죽음이 값을 지닌다. 현상금 추적자들이 나타나는 이유다.'(Where life had no value, death, sometimes, had it's price. That is why the bounty killers appeared) 이탈리아의 세르지오 리오네 감독, 작곡가 엔니오 모리꼬네, 명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빚어낸 3편의 걸작 중 1965년 선보인 '석양의 무법자' 첫 장면 자막이다. 진실이 가치가 없는 곳에서 때로는 거짓이 그 값을 갖는다.


탐욕에 찌든 권력자들의 뻔뻔한 생존 비법이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서부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악당을 처치하며 삶의 가치를 복원했다면, 이역만리 한국에선 나훈아가 정의의 복원을 외친다. 한국인의 정서에 길이 남을 명곡 '고향역'의 나훈아가 신곡 '테스형'에서 호기 있게 소크라테스를 향해 던진 물음이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 사람의 공명을 얻는다.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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