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국가균형발전이 필요 없는 지역민

입력 2020-10-15 14:47:25 수정 2020-10-16 06:31:08

사진은 서울 송파,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서울 송파,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유광준 서울 정치부 차장대우
유광준 서울 정치부 차장대우

# 장면1

지난 추석 연휴 고향에 다녀왔다. 모처럼 만에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한가위의 넉넉함을 만끽했다. 그런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자마자 좌중의 화두(話頭)는 이내 서울 집값으로 모아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양'의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자기 집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30대와 40대 연령층을 중심으로 공황구매(패닉바잉·panic buying)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리라.

줄곧 듣는 입장이었고 많이 놀랐다. 지역에서 생업을 이어가는 인사들임에도 서울 집값을 훤히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지명까지 언급하며 최근 매매 동향까지 읊는 이가 있었을 정도다.

비결이 궁금했는데 금방 해소됐다. 대구경북에 살면서도 서울에 집을 보유한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남은 부동산 승부처는 서울뿐이라며 조만간 '상경 투자' 대열에 합류하겠다는 지인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필자의 주거 형태(자가 보유 여부)를 묻는 어르신도 있었다.

한국감정원의 '아파트 매매 거래 월별·매입자 거주지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지난 2006년 1월 이후부터 올해 8월까지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구매한 사람은 모두 177만2천897명이었는데 이 중 32만4천781명(18.31%)이 외지인(서울 외)이었다. 문재인 정부(2017년 5월부터) 임기 중 '외지인 매입 비율'은 19.62%, 올해는 20.42%다.

# 장면2

정부는 서울 집값이 좀처럼 잡히지 않자 지난여름 서울 태릉골프장을 포함한 수도권 유휴 부지 활용과 공공재건축 용적률 완화 등을 통해 서울과 수도권에 13만2천 호를 추가 공급하는 내용의 8·4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지역에선 아연실색했다. 국토균형발전과 지역의 혁신 성장을 위해선 행정수도 이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여권이 불과 보름 만에 과밀화로 '대사증후군'에 걸린 수도권에 집을 더 우겨 넣겠다는 정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서울과 수도권의 추가적인 주택 공급이 광역교통망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과 맞물린다면 수도권 인구의 지방 분산이나 지역균형발전 등과는 상충할 수밖에 없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태릉골프장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고밀 재건축까지 도입해 수도권에 13만 호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은 행정수도를 이전하면서까지 균형발전을 하겠다는 정부의 정책과 전혀 맞지 않는 대책"이라고 꼬집었다.

지역의 불만을 의식한 듯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전국 광역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초청해 진행한 제2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정부는 담대한 지역균형발전 구상을 갖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가발전전략으로 한국판 뉴딜을 강력히 추진하고자 한다"며 "국가 발전의 축을 지역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지역 정가에선 언제 뒤집을지 모를 '사탕발림'에 불과하다는 혹평이 나왔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원리가 헌법의 근간인 대한민국에서 시도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투자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개인의 노력을 어찌 탓할 수 있을까! 다만 염려는 본인 자산의 상당 부분이 수도권에서 운용되고 있어서 지역균형발전이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한 시도민이 늘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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