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가슴의 사랑은 세월 따라 더 아파진다

입력 2020-09-28 14:12:48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이쌍규
이쌍규

어릴 때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비가 오면 나의 정서는 차분하고 쾌활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어머니다. 비가 오면 어머니는 시장 장사를 일찍 마치고, 집으로 빨리 오시기 때문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어머니가 반갑게 맞아주는 날이기도 했다. 맨날 비가 오기를 항상 기도했다.

비가 오는 어느 날.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어머니는 동네 아줌마와 함께 대청마루에서 화투를 치고 계셨다. 장사 때문에 그동안 하지 못한 동네 친교생활을 보충하고 계셨다. 동네 아줌마 '전투 고도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막둥아! 동네 가게에 가서 잔돈 좀 바꾸어 오나. 잔돈이 부족해서 현금 박치기가 안 된다. 그 참에 과자도 하나 사먹고…." 거금의 지폐를 들고 동네 가게로 들어섰다. 그 순간부터 나의 생각은 달라졌다. 과자 욕심이 발동되었다. 평소에 먹고 싶었던 과자를 모두 사서 어머니가 준 돈으로 모두 결제했다. 그리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신나게 먹었다. 본분을 망각한 사회적 일탈행위였다. 어머니의 심부름을 기망한 사기행위였다. 과자 파티가 끝날 때, '먹튀' 범죄행위의 심각성이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어머니의 분노상황이 무서웠다. 그래도 열심히 생존해야 한다는 '자아존중감의 잔머리'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일시적 가출을 도모하자. 어머니가 나를 찾을 때까지 동네 근처를 방황하자. 그런데 방황을 계속해도 어머니가 나를 찾지 않았다. 마지막 해결책을 시도하였다. 옆 동네 파출소에 찾아가서 길을 잃어버렸다고 거짓 신고를 했다. 그 후 어머니와 어색한 해후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침묵을 깨면서 한 말씀 하셨다. "과자 너무 많이 먹지마라!" 그 후로부터 어머니는 잔돈 교환 심부름을 절대 시키지 않았다. 교육적 차원에서 두 번 다시 먹튀를 허용하지 않았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더욱 보고 싶은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예정된 이별의 시간을 가지고 산다. 그 시간 속에서 서로 결핍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결핍의 반대는 충족이 아니고, 자유다. 시기와 질투로 우리의 인생을 서로 낭비하지 말자. 탐욕적 자본의 광풍 속에서 상처를 받더라도, 조금만 당당하게 자기 자신에게 배려해보자. 세상 풍파 속에서 떼인 희망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삶이 당신을 속이면, 먼저 분노하고 천천히 저항하자. 바보처럼, 무식하게 참지 말자. 머리의 사랑은 세월 따라 잊어지지만, 가슴의 사랑은 세월 따라 더 아파진다. 완벽한 사랑보다는 부족한 사랑이 우리에게 더 소중하다. 비대면의 '코로나 추석'이라도,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전하자. 사랑한다고 독백만 하지말자. 독백은 마음속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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