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cm 칩 안에 숨쉬는 허파

인체의 장기를 작은 칩 위에 하나, 또 하나 올려놓는 과학자들이 있다. 처음엔 숨쉬는 허파를 작은 칩 위에 올려놓더니 이내 두근두근 가슴 뛰게 만드는 심장도 칩 위에 올려놓았다. 얼핏보면 마치 한여름 밤의 무더위를 식혀줄 호러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장기 칩. 이것은 작은 칩 위에 장기 모형을 올려놓은 것이 아니다. 진짜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를 칩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과학자들은 왜 살아있는 인체 장기를 마이크로 칩 위에 올려놓으려고 할까? 이제 장기 칩(Organ-on-a-chip)을 만들고 있는 과학자들이 꿈꾸는 미래를 살짝 들여다보자.

◆숨쉬는 허파를 칩 위에?
세포는 생명체의 가장 기본 구성요소다. 이 살아있는 세포를 몸 밖에서, 그러니까 실험실의 그릇에서 키우기 시작한 것이 백년 전부터다. 사실 오랜 인류 역사를 생각할 때 최근에서야 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이로인해 과학은 크게 발전해왔다. 최근 세상을 또 한번 놀라게 하는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는데 바로 인체의 장기를 작은 칩 위에 올려놓는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장기 칩은 허파 칩(Lung-on-a-chip)인데 이것은 2010년에 미국 하버드대학 위스연구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 허파 칩을 개발한 주역은 미국에서 연구하는 한국인 과학자 허동은 교수다. 허 교수는 위스연구소에서 허파 세포를 작은 마이크로 칩에 넣어서 배양하여 허파 칩을 개발했다.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으로 옮겨 장기 칩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허 교수가 만든 허파 칩은 크기가 3 센티미터 정도인데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폴리머 재질로 되어 있다.
이 칩에는 실선을 몇 개 그어놓은 것처럼 가늘고 긴 마이크로 채널이 몇 가닥 있는데 그 안에 살아있는 허파 세포를 넣고 배양했다. 또한 이 허파세포가 건강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영양분과 산소가 마이크로 채널을 통해 공급되었다. 그리고 허파가 숨쉬는 것을 모방하기 위해 이 허파 칩의 다른 마이크로 채널에 공기를 넣었으며 진공을 가해서 마치 허파가 숨을 쉬는 것과 같은 동작을 모방했다. 이 허파 칩은 우리 몸의 허파를 대신해 여러 연구에 이용될 수 있다고 한다.

◆칩 위에서 팔딱팔딱 뛰는 심장세포
내 몸의 심장 세포가 일을 그만 두는 날, 그날이 바로 내가 죽는 날이다. 엄마 뱃속에서 작은 심장이 만들어져 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심장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피를 온 몸 구석구석으로 보낸다. 심장은 살아있는 심장세포들이 모여 만든 장기인데 이 심장세포 하나 하나가 규칙적으로 함께 팔딱팔딱 움직이기 때문에 그 작은 힘들이 모여서 심장을 두근두근 움직이게 한다.
세계 최초로 심장 칩(Heart-on-a-chip)을 만든 곳도 바로 위에서 살펴본 허파 칩을 처음 만들었던 곳인 미국 하버드대학 위스연구소다. 이 연구소의 케빈 키트 파커 연구팀이 2011년에 심장 칩을 처음 개발했다. 이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의 케빈 힐리 교수팀은 심장 칩을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신약의 효과를 시험한 결과를 사이언티픽 리포트 학술지에 2015년에 발표했다.

이 연구팀은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심장세포로 분화시킨 다음에 마이크로 칩에 넣어서 작은 심장조직을 만들었다. 살아있는 심장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마이크로 채널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심장 칩의 심장세포들이 팔딱팔딱 뛰는 것을 연구원들이 관찰했다. 이후 연구원들은 심장병 치료제 4종을 심장 칩에 주입하는 실험을 했다. 이 약은 심장박동수가 정상보다 느린 환자들에게 투약해서 심장박동수를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심장 칩의 심장세포들은 보통 상태에서 분당 55~80회 정도로 수축과 이완 운동을 하며 뛰었다. 그런데 심장병 치료제 약을 주입하자 심장세포가 더 빨리 뛰기 시작하더니 최대 124회까지 박동수가 증가하는 것을 연구원들이 관찰했다. 이처럼 심장 칩은 심장질환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약의 효과를 미리 시험해 보는 데에 이용할 수 있다.

◆피부 칩이 동물실험을 대신한다?
유럽에서는 2013년부터 화장품의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다. 새로운 화장품을 개발하는데 이 화장품이 피부에 얼마나 효과가 있으며 독성은 없는지 실험을 해야하는데 동물실험이 금지되어서 화장품 회사들은 난감한 상황이 놓였다. 그렇다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바로 사람에게 실험해보거나 이것도 하지 않고 화장품으로 팔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할 획기적인 방법으로 피부 칩(Skin-on-a-chip)이 인기를 끌고 있다. 피부 칩은 피부세포를 작은 마이크로 칩에 올려놓아 만든 것이어서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도 피부실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 여러 연구팀에서 피부 칩을 개발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서울대병원 최태현 교수팀과 고려대학 이상훈 교수팀 등이 피부 칩을 2017년에 개발했다.
이 연구팀은 크기가 1 센티미터 정도되는 피부모델 마이크로칩을 만들었다. 특히 이 피부 칩은 단순히 한 가지 피부세포로만 만든 것이 아니라 표피, 진피, 혈관 등을 포함하고 있어서 우리 몸의 피부에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피부 칩은 아직 개발 초기 단계에 있지만 향후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피부 칩은 화장품 개발뿐만 아니라 피부질환과 관련된 신약 개발 과정에서도 시험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몸의 화학공장 간을 올려 놓은 간 칩
해독작용과 호르몬 생산 등 우리 몸에서 화학공장과 같은 일을 하는 간을 올려 놓은 간 칩(Liver-on-a-chip)도 개발되었다. 세계 여러 연구팀에서 간 칩을 개발했으며 최근에는 간 칩을 이용한 신약의 독성시험 연구결과도 보고되었다. 에뮬레이트 기업의 제랄딘 해밀튼 연구팀은 간 칩을 만들어서 신약의 독성시험을 한 결과를 사이언스 트랜슬레이셔널 메디신 학술지에 2019년에 발표했다.
이 연구팀은 쥐와 개 및 사람의 간세포를 올려놓은 간 칩을 만들었다. 그리고 연구원들은 이 간 칩에 신약을 주입하였을 때 간세포 손상, 지방간, 담즙정체증, 간섬유화 등과 같은 간 독성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칩 위에 올라간 뇌는 무슨 생각을 할까?
새근새근 숨쉬는 허파, 두근두근 가슴 뛰는 심장, 그리고 피부와 간도 작은 마이크로 칩에 올려졌다. 그렇다면 머릿속 뇌도 마이크로 칩 위에 올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으로 과학자들이 뇌 칩(Brain-on-a-chip)을 만들었다. 작은 칩 위에 올려진 살아있는 뇌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엉뚱한 생각도 들지만 실제로는 뇌의 작은 일부분을 마이크로 칩 위에 올려 놓은 것이다.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들이 장기 칩을 만드는 핵심 기술인 미세유체 기술을 이용하여 뇌 칩을 만들었다. 이처럼 실험실에서 작은 마이크로 칩에 살아있는 뇌세포를 올려놓은 뇌 칩을 만들면 동물이나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실험하지 않아도 뇌에서 어떠한 작용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할 수 있다. 뇌는 다른 장기와 다른 특수한 기능과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이다.
보통 우리가 약을 먹으면 위와 장에서 약이 흡수되어 혈관을 통해 해당 장기로 가서 약물이 장기로 들어가서 치료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 뇌에 있는 혈관은 다른 장기의 혈관과 달리 매우 촘촘하게 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약이 혈관을 통과하여 뇌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렇게 뇌에만 존재하는 매우 촘촘한 혈관구조를 혈뇌장벽이라고 한다.

미국 유타대학의 로스 부스 연구팀은 뇌의 혈뇌장벽 구조를 갖는 미세유체칩을 만들어서 약물이 혈뇌장벽 구조를 어떻게 통과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의공학연감 학술지에 2014년에 발표했다. 이처럼 뇌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중요한 약물을 혈뇌장벽을 통과해 주입하는 기술에 대한 연구를 뇌 칩을 만들어 실험할 수 있다. 또한 알츠하이머 치매나 파킨슨병과 같은 뇌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뇌 칩을 이용하여 약물의 효능을 시험해볼 수도 있다.
최근 인체의 여러 장기들을 작은 마이크로 칩 위에 올려놓은 장기 칩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이 장기 칩은 현재 연구개발의 초기단계에 있어서 대량 생산하여 실제로 활발하게 많이 이용하기에는 아직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향후 장기 칩은 신약개발이나 화장품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대체할 방법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최근에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김영호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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