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나도 꽃이면, 당신도 꽃이다 -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입력 2020-09-21 14:23:06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코로나 이후 서로 만나지 못하다가, 모처럼 후배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술자리 대화 중 '라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후배 한 녀석이 "자기 인생에서 최고로 맛있는 것은 ○○라면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하였다. 그 이후로부터 술자리 내내 '라면 맛' 논쟁이 시작되었다. 남들이 보면 의미 없는 술자리 이야기이지만, 논쟁의 발단은 처음 이야기한 후배의 화법에서 시작되었다. 자기가 선호하는 라면 맛을 이야기했으면 논쟁이 촉발되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최고'라는 확정적 단어를 사용하여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였다. 자기 맛이 최고이고, 남들이 선호하는 라면의 맛을 철저히 무시하였다. 음식의 최고 맛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경험과 선호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최고의 맛도 하나의 선호 의견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늘 불편해한다. 저마다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한다. 정보의 객관성과 과학성을 철저히 무시한다. 한번 옳다고 믿는 생각은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것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확증 편향에 빠지면 자신의 믿음에 반대되는 증거나 새로운 정보들이 나오더라도 자기 신념에 빠져 그와 반대되는 증거들은 모조리 무시해 버린다.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이기적 존재다. 그래서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어울린다. 그들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한마디로 뜨거운 물에 들어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병 안의 개구리와 같은 존재다. 확증편향은 개인, 집단 또는 국가 차원에서 발생하는 온갖 갈등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 확증편향이 섹시한 선동자를 만나면, 점차 음모론으로 진화된다. 맛있는 케이크 위에 있는 비싼 체리만 골라먹는 비이성의 진영논리를 다시 확대된다. 자기 의견이 곧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각자의 의견이 숙의와 토론을 통해서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다. 다른 의견을 무시한다고 진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무결점의 오류는 신(神)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다. '나와 우리는 언제든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거봐, 내 말이 모두 맞잖아'의 닫힌 전체주의 시대는 이제 아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나도 꽃이면, 당신도 꽃이다.

작년에 고등학교 막내딸이 지워지는 타투(tattoo)를 했다. 그 타투를 보고 한소리를 했다. "18이라는 욕을 왜 타투하노?" 이 말을 듣고 딸이 점잖게 충고한다. "딸의 나이(18)도 모르는 가련한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8은 욕이 아니고, 나이고 숫자 일수도 있다. 생각의 차이가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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