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코로나 시대 추석, 효도의 정석은?

입력 2020-09-20 16:31:54 수정 2020-09-20 18:12:21

백선기 경북시장군수협의회장(칠곡군수)

백선기 경북시장군수협의회장(칠곡군수)
백선기 경북시장군수협의회장(칠곡군수)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정부는 추석 연휴 때 대규모 이동이 발생하면 코로나19 감염 확산 우려가 크다며 고향과 친지 방문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 2017년부터 명절에 면제였던 고속도로 통행료도 유료로 전환하고 벌초 대행이나 온라인 성묘 및 차례를 권장하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가 코로나19 확산의 중대한 고비이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전국에 역병이 돌 때는 명절이라도 모임을 금지하고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유교문화의 중심인 경북에서도 그러한 기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천에 살던 권문해는 '초간일기'(1582년)에서 나라 전체에 전염병이 유행하는 탓에 차례를 지내지 못해 조상님께 송구스럽다고 했다. 안동 하회마을 류의목도 '하와일록'(1798년)에서 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기록했다.

역병이 발생하면 모임 금지, 외지인 출입 금지 등 사람이 모이는 걸 최대한 통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일한 치료법이자 예방법이었다. 지금의 코로나19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코로나19는 조선시대 홍역과 천연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파괴력이 강한 전염병이다. 이에 필자는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 비대면 추석 문화의 확산을 위해 '언택트 추석 캠페인'을 기획했다.

캠페인은 SNS에 고향 방문과 모임을 자제하자는 내용이 담긴 글을 남기고 다음 참여자를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캠페인이 시작되자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각계각층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며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성인문해 교육을 통해 한글을 깨친 백발의 어르신들은 "며느라! 올개는 눈치 보지 말고 안 내리와도 된다" "아들아! 엄마 안와도 한게도 안 섭섭다. 손자들캉 집에서 추석 재미나게 보내라"며 구수한 사투리로 혹시나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식들을 안심시키는 글을 남겼다.

귀암 문익공 13대 종손인 이필주(78) 씨는 마을에서 종친들과 함께 "고향은 마음속에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을 위해 전화로 정을 나누었으면 합니다"라는 글귀를 들고 문중들의 귀향 및 귀성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채석균 칠곡군재경향우회장도 "이번 추석 명절에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향우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당부드립니다"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고향 방문 자제를 호소했다.

최삼자 주부는 "코로나로 힘든 아들아! 이번 추석은 마음만 보내고 그리움은 영상으로 채우자. 사랑한다"라며 아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손경희 칠곡문화원 사무국장은 "따르릉~~ 올해는 열심히 일하는 아들, 며느리에게 언택트 추석이라고 전화 주세요"라며 시어머니에게 당부하는 글을 남겨 눈길을 끌었다.

이번 캠페인은 관(官)이 아닌 주민 주도로 확산되며 비대면 추석 문화 형성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칠곡군에서 쏘아 올린 이 캠페인이 경상북도 23개 시·군으로 확산됐으면 한다.

고령일수록 치명률이 높아 고향 오면 불효자라는 게 빈말만은 아니다. 귀향하지 않는 것이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는 최고의 추석 선물이자 효도일 수 있다.

이번 추석에는 불행히 귀향할 수 없고, 차례를 지낼 수 없다 해도 부모님과 친지, 이웃들과 더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참된 효도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정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260만 경북도민의 동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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