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희의 추억의 요리산책] 백성의 물고기, 민어(民魚)

입력 2020-09-14 16:30:00

민어구이
민어구이

경상북도 내륙 산촌에서 신선한 해산물 구경하기란 쉽지 않았다. 함흥 앞바다를 앞마당처럼 바라보고 살았던 조부모님과 아버님은 해산물을 좋아하셨다. 진짓상에는 생선 토막이 꼭 올라야 했다. 겨울에는 동태찌개가 단골 메뉴였고, 여름철에는 오일장에서 사 온 자반을 소금단지에 묻어두고 숯불에 구워 드셨다. 아버지는 가끔 부산에 다녀오셨는데, 그때는 해산물을 상자째 사서 오기도 하셨다. 유독 생선이 풍성했을 때는 명절이나 집안 행사 전날이었다.

할머니는 손질한 생선 대가리에 싸리나무꼬챙이를 꿰었다. 줄줄이 꿴 생선을 감나무 가지 그늘에서 하루동안 꾸덕꾸덕하게 말린 후, 다시 한 마리씩 세로로 꼬챙이에 꿰어 화롯불에서 은근하게 구웠다. 솔잎을 깐 채반에 올려진 생선, 이제껏 할머니가 구워준 생선만큼 맛있는 구이를 먹어보지 못했다.

백화점 식품매장에 민어가 보인다. 명절때 할머니가 구워주던 생선이 그리워 덥석 집었다. 숯불은커녕 솔잎도 마련치 못했지만, 프라이팬에 구워서 아쉬운 대로 그리움을 삼킨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백성의 물고기'라고 불리는 민어(民魚)를 좋아했다. 그러나 민어는 결코 서민이 즐길 수 있는 식재료는 아니었다. 임금님 수라상과 사대부 밥상에 오르는 고급 어종이었기 때문이다. 부모 생전에 대접해 드리지 못했기에 제사상에라도 올려야 한다며 준비하는 생선이 바로 민어이다. 그만큼 민어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물고기로 인정받았다. 민어는 크기에서부터 위엄이 있다. '손바닥만 한 조기, 팔뚝만 한 고등어, 길기만 하고 경망스러워 보이는 갈치와 달리 크기와 굵기에서 일단 한자 먹고 들어간다'는 얘기가 있듯이 일단 다 자라면 1m가 넘는 대형 물고기가 된다.

민어찌게
민어찌게

기록에 보면, 숙종 임금이 우암 송시열의 80세 생일에 장수 축하 선물을 보냈다. 선물 품목 중에는 민어 20마리와 조기 30속(束)이 들어있었다. 씨알이 작은 조기는 '마리'가 아니라 10마리를 1속(束)으로 묶어 셌으니, 조기 30속은 300마리가 된다. 민어 20마리가 조기 300마리와 맞먹었다는 것이다.

민어는 17가지 맛이 난다고 한다. 꼬리는 운동량이 많아 쫄깃하고, 머리 아랫부분은 뭉친 맛이 나고, 뼈를 끓이면 곰탕처럼 뽀얀 국물이 우러나온다. 남도지방에는 복달임 음식으로 민어를 으뜸으로 쳤다. 민어찜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민어가 천 냥이면 부레가 구백 냥'이라는 말도 있다. 민어 부레는 식감이 쫄깃하고, 씹을수록 고소해 인절미 맛이 난다. 또한 부레로 아교풀을 만들었는데, 고급 칠기가구나 각궁(角弓·활), 합죽선 등에 접착제로 사용했다. '이 풀 저 풀 다 둘러도 민애풀 따로 없네', '옻칠 간데 민어 부레 간다'는 속담은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민어는 이름도 많다. 30㎝ 내외의 것을 '홍치', 특대를 '개우치', 크기에 따라 '부둥거리', '보굴치', '가리', '어스래기'라 불렀다. 민어의 영어 이름이 특이하다. 'Brown Croaker', 개구리처럼 운다는 뜻이다. 산란기가 되면 어찌나 울어대는지 밤잠을 설친다고 할 정도이다. 요즘 제소리 한마디 못 내는 사람이 있다면 민어에게 배울 일이다.

민어는 달고 평(平)한 성질에 보허・보기의 효능이 있다. 회, 탕, 튀김, 구이 등 다양한 요리에 응용할 수 있다. 여름철 보양식으로 으뜸이라지만, 사철 어느 때나 먹어도 좋은 생선이다. 오는 추석 상차림에 백성의 물고기를 장만해서 올려도 좋을 것이다.

노정희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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