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서면 10점의 작품이 선을 보인다. 크기는 50호부터 200호까지 주로 대작 위주이다. 어떤 작품은 검은 세로선이 주를 이루고 어떤 작품은 흰 세로선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은 담담하면서도 편안하다.
제작과정이 궁금해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가니 한지 위에 붓글씨를 쓴 후 가로 1cm 간격으로 자른 후 실처럼 꼬아 희고 검은 무늬를 지닌 길고 긴 타래를 만들고 이를 판넬에 세 겹에 걸쳐 빽빽이 나열하고 접착제로 고정시켜 놓았다.
대구 을 갤러리는 오랫동안 형식성을 탈피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섬유예술분야에서 독창적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작가 차계남을 초청, '선(禪)한 선(線)'을 주제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한지에 붓글씨를 쓰고 이를 잘라 실타래로 엮는 과정은 무한 반복의 작업이자 시간성을 드러내는 조형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매일 작업실에서 온종일 종이 실을 뽑고 또 화면에 반복해 붙이는 고행과 같은 과정을 통한 노동의 결과물을 만들어냈고 이를 관객들에게 선보이는데 대해 스스로 만족했다. 그녀의 작품은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물러섰다 다가서기를 반복해야만 작품이 내뿜는 묵직한 힘과 무게와 더불어 흑백의 화면에 드러나는 다양한 무채색의 느낌을 비로소 읽을 수 있다.
특히 을 갤러리의 이번 전시는 차계남의 작업 중 그간 주목받지 못한 '선'(線)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서예와 사군자를 배우며 먹으로 반야심경을 쓰고 사군자를 치기 시작하며 쌓인 수많은 한지가 이번 전시의 소재가 되면서 작가는 새로운 매체에 눈을 떴고 지금의 선과 작품 형태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재료가 된 붓글씨와 실로 꼬여 드러나는 작품 속 '점'과 글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그 탄생의 순간과 그것이 잘려져 해체되어 드러난 '선'은 무한 반복되는 시간의 여정을 상징한다.
이뿐 아니라 한지와 먹이라는 재료를 이용한 차계남의 이러한 작업은 씨줄과 날줄을 짜 역는 섬유 예술과 다르게 화면에 실을 접착하는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작가가 섬유 예술로부터 결별을 선언하는 의미도 있다.
그녀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흰 여백은 그대로 여백이 되며 먹이 지나면서 남긴 흑색의 점들은 선과 어우러져 드러나기도, 사라지기도하면서 유와 무의 현상이 우연과 필연으로 유기적으로 겹쳐지는 것은 작가 의식의 큰 변화이자 새로운 것을 향한 치열한 구도의 자세이다. 전시는 10일(토)까지. 문의 053)474-4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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