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입력 2020-09-09 06:30:00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화상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평소와 달리 안경을 쓰지 않은 채 회의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화상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평소와 달리 안경을 쓰지 않은 채 회의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최정암 서울지사장
최정암 서울지사장

국민들의 청와대‧정부‧여당에 대한 불만이 확산일로다. 부동산 정책이 정점일 줄 알았는데 의사들의 의료 파업 사태에 이르러서는 거의 절망적이다. 과연 우리 국민을 이끄는 정부가 맞는지 의문스럽다.

돈 잘 벌고 사회적 강자인 의사들의 파업에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맞다. 제 밥그릇 뺏기지 않기 위해 환자들을 볼모로 잡았다는 비판도 많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시기에 의사들과 의대생들을 파업‧시험 거부란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지금은 어느 때보다 의료진의 협조와 희생이 절실한 시기이다. 1차 대유행을 견뎌내고 전 세계에 'K방역'을 자랑한 것도 의료진의 헌신 덕분이었다.

광복절을 전후해 수도권에서부터 2차 대유행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정부는 이런 와중에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정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고민을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특히 지방에서 근무할 의사가 모자란다는 것을 실감한 상태였다.

그러나 정책 발표도 타이밍이 있다. 이해관계인과 공감을 이루지 못한 정책을 의료진의 협조가 절실한 이때 발표한 것은 한마디로 '뇌가 없는' 정책 행위이다.

이해당사자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한 일.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은 파업과 국가시험 거부라는 예상된 강수로 맞섰다. 정부는 원칙대로 한다고 했다가 이내 꼬리를 내렸다. 의사들이 불법 파업을 했으면 처벌이 따라야 하는데 총리까지 나서서 "단 한 명의 의료인도 처벌받는 걸 원하지 않는다"며 달래기에만 급급했다.

급기야 정부 여당과 의사협회는 지난 주말 "코로나가 안정될 때까지 의대 정원 확대·공공의대 설립 관련 논의를 중단한다. 코로나가 안정되면 협의체를 구성해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 열어두고 재논의한다. 논의 중에는 관련 입법 추진을 강행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정책을 발표해서 이 난리를 피웠는지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중환자들과 국민들 피해는 어디서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답도 없다.

힘 있는 집단 앞에서 정부 여당은 맥없이 물러섰다. 당연히 이럴 거면 왜 추진했느냐는 비판이 거세다. 의사들이 아니고, 다른 힘없는 단체가 반발했다면 정부가 이랬을까. 불가피한 정책이라면 이해당사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실행을 해야 한다. 공권력이 무너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지풍파를 일으켜 놓고는 꼬리를 내려버렸다. 이 정도 반발도 예상 못했단 말인가.

더 가관인 건 청와대다. 대통령까지 나서 의사들의 속을 뒤엎어버렸다. 대통령이 SNS를 통해 의사와 간호사들을 갈라치기하고는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일개 비서관이 한 일이라고 발뺌을 했다. 치졸하기 그지없다.

이런 와중에 법무부 장관의 아들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코로나와 태풍으로 지쳐 있는 국민들의 마음에 갖가지 생채기를 내고 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법무장관이 직접 나서서 특임검사 도입을 검찰에 지시하면 되는 일이다. 이러면 끝날 일을 가지고 무엇이 두려워서인지 정쟁으로만 몰고 간다.

180석에 이르는 거대 의석을 차지했다고 국회에서 전횡을 휘두르는 여당도 꼴불견이다. 소선거구제 특성 때문에 의석을 주워간 것이지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것은 절대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 야당과의 지지율 격차는 불과 10%포인트 내외였다. 그런데도 국민들이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며 오만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이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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