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보국대 피하기 위해 15세에 결혼…조부모까지 모셔
낡은 전축으로 민요 들으며 장단 맞추시던 모습 눈에 선해

"아니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서산에 해 기울고 단풍이 짙었는데 안 오는 님을 기다리며 마음을 조일 적에~~"(「창부타령」 일부분)
어머니는 평소 민요 듣는 것을 좋아하셨다. 물론 곧잘 따라 부르기도 하셨고 어떨 땐 나풀나풀 어깨춤도 곁들이셨다. 그중에서도 안비취 선생의 「창부타령」과 김영임 선생의 「회심곡」은 내가 따라 익혔을 정도로 수시로 입에 달고 사셨다.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집에 내려가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낡은 전축에 흥겨운 민요를 틀어놓고 넓은 대청마루에 목침을 베고 누워 사이좋게 손바닥으로 마룻바닥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흥겹고도 애잔한 경기민요를 나는, 슬며시 어리는 눈물을 행여 집사람에게 들킬세라 슬쩍 훔쳐 가며 요즘 밤마다 유튜브로 듣는다. 어머니가 아버지 곁으로 가신 지 오늘로 보름째. 당신의 빈자리가 민요 한 소절 속에서 더 크게 느껴진다.
올해 94세로 삶을 마감하신 어머니는 일제의 보국대를 피하기 위해 15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결혼했다. "시집와보니 할배, 할매에다가 조부모까지 계시드라.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수발을 다 들었다. 그뿐일 줄 아나? 너 막내고모 아즉 알라드라. 내가 다 키우다시피 했다." 막내아들이 알아주길 바라셨을까? 고생담을 입버릇처럼 되 뇌이셨다.
"그 시절에 고생 안 한 사람 어디 있노?" 비록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얼마나 힘든 시집살이를 했는지, 거기에다 팍팍한 살림살이에 딸 넷, 아들 둘, 육남매까지 거느리느라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펴고 사셨다는 걸, 막내아들이 너무너무 가슴 아파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가셨을까?
시골집 넓은 마당을 휘감아 울려 퍼지던 흥겨운 민요 가락은 어쩌면 젊은 시절을 보상받고 싶었던, 그리고 자식들이 알아주길 바랐던 어머니의 또 다른 마음이 아니었을까? 작열하는 8월의 태양만큼이나 불현듯 어머니가 보고 싶다.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그곳에서 부디 행복하세요. 그리고 다음 생에는 어머니가 저의 딸로 태어나세요. 제가 받은 사랑의 수십수백배로 사랑할게요. 사랑해요. 어머니^.^
어머니의 막내아들 김태용(민주당 대구 달서을 지역위원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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