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학생들과 '조선독립회복연구단' 활동
안동농림 재학 때 무력 거사 계획…단원 대부분 옥고, 해방 후 풀려나
뿔뿔이 흩어져…35년 만에 졸업장
"살아생전 통일이 이뤄져 한반도에 평화가 뿌리내리길 기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12일 대구 달서구에서 만난 장병하 애국지사는 "책을 통해 당시 어려운 시골 사회의 현실을 알게 됐고 조국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거사를 준비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1928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장병하 애국지사는 안동농림학교를 입학해 식민지 치하의 사회를 바로잡고자 노력한 인물이다. 그는 이갑룡, 황병기 등과 함께 상지회라는 클럽을 만들어 독서와 토론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1944년 10월 학생들과 함께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을 결성했다. 이들은 '잠자는 우리 민족을 깨우며 오직 조국의 독립을 회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조직을 구성했다.
그는 상지회에서 이광수의 무정 등의 책을 읽으며 일제의 부당함에 대해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당시 한국의 실상은 일제의 부당한 식민 통치로 인해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힘든 사회였다"며 "조국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학생들이 모여 토론을 하거나 모이는 것 자체가 당시 감시로 인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점조직으로 구성된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을 구성해 활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당시 거사 계획이 생생하다. 장 애국지사는 "당시 헌병 4명이 근무하고 있는 곳에서 무기를 탈취해 경찰서로 이동, 우체국 교환대와 읍사무소 관공서 등을 파괴하고 장악하려 했다"며 "아주 은밀하게 작전을 구상하고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낙동강 철교의 도면을 그리고 전신주를 타는 연습 등 확실한 무장투쟁을 위해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장 애국지사는 날짜 선정 등 치밀하게 진행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일본 육군 기념일인 3월 10일 거사를 치르려 준비했다"며 "축제가 열리면 술을 마시고 놀 것이라는 생각에 무력투쟁을 하기로 합의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된 일인지 1945년 2월부터 단원 1명이 잡혀가기 시작하면서 3월까지 대부분의 단원이 채포됐다"며 "당시에 함께 체포돼 독립을 하면서 같은 해 8월 18일 안동형무소에서 출옥했다"라고 말했다.
출옥한 이후 그와 단원들은 뿔뿔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장 애국지사는 "지금처럼 쉽게 연락할 수 없는 시절이다보니 이후 연락을 거의 하지 못해 슬펐다"며 "다만 35년 만에 받은 졸업장과 출옥 당시 찍은 사진에서 그들의 모습을 확인할 뿐이라 아쉽다"라고 말했다.
그는 동료들과 거사를 위해 노력한 것은 평화로운 한반도를 위함이었다고 밝혔다. 장 애국지사는 "10대에 독립은 어떻게 하면 될까? 어떻게 하면 편하게 살 수 있을 까? 라는 생각으로 나섰다"며 "90대가 된 지금은 평화로운 한반도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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