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대기 딱 좋은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여전히 진행 중인 가운데 총선이 치러지다 보니 그렇다. 가뜩이나 심란한데 굳이 마스크 쓰고 집을 나서 줄까지 서서 한참을 기다린 뒤에 딱히 마음에 드는 후보도 없는데 투표를 하려니 썩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저마다 자신이 금배지를 달고 여의도에 입성하면 세상을 바꿀 듯이 확성기에 외쳐대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세상에 저렇게 욕을 먹는데도 불구하고 제 돈까지 써가며 굳이 그 일을 하겠다고, 자기만큼 잘 하는 사람이 없으니 제발 잘 봐달라고 나서는 직업도 없으리라.
그러나 총선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사람들도 많다. 현 정부와 여당을 심판하자는 사람들이다. 새 시대의 희망을 품고 정권을 맡겼더니 살림살이는 나아진 게 없고 제 몫 챙기기에 바쁘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며, 이제라도 혼쭐을 내주자는 사람들이다. 물론 반대쪽도 있다. 제대로 힘을 실어주지 못해 마음껏 정책을 펴지 못했는데, 힘 있는 여당을 만들어 제대로 된 개혁과 정치, 경제 발전의 토대를 닦아주자는 사람들이다.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지향점이 다른 만큼 누가 옳고 그르고는 논할 바가 못 된다.
게다가 특정 정당의 공약이나 정책이 잘못된 사상적 바탕에서 출발한 만큼 과정도 정의롭지 못하고, 결과도 국익에 이롭지 못할 것이라는 식의 논리적 근거 위에 판단하는 사람은 드물다. 부동산 정책이 오로지 세금 긁어내려는 수작이라며 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집값 좀 제대로 잡아달라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다. 대학입시에서 수시가 맞다는 사람과 정시가 답이라는 사람은 어느 쪽의 정의롭거나 부정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볼 때 무엇이 유리한지 따져 그에 부합하면 옳고, 그런 정책을 펴는 정당은 우리 편이다. 당장 내게 손해가 올지언정 대의에 맞으니 그 정당을 지지한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게 사람이고 국민 정서이며, 이를 반영한 것이 선거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저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한 장을 할애해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지하다'고 갈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헤아리는 경우가 드문 이유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로 가득한 반향실(소리가 울리는 방)과 자기 의견을 강화해 주는 뉴스피드(News Feed) 안에만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믿음은 계속해서 공고해질 뿐 도전받는 일이 거의 없다.'
선거는 세상에서 내가 어디쯤 자리 잡고 있는지 확인시켜 주는 소중한 기회다. 자신이 찍은 후보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행여 선거에서 졌다고 해서 자신이 틀렸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와 반대도 마찬가지다. 내 후보가 졌다고 해서 그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멍청이라는 생각도 틀렸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제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뽑아주는 행위처럼 여겨질 수도 있고, 그저 내 잇속에 유리한 사람을 뽑는 낯 간지러운 행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선거에는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자신이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어슴푸레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 그렇게 좌표 설정이 이뤄져야 온전한 방향 제시가 가능하다. 그게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내 목소리만이 옳다고 무한 반복으로 메아리쳐대는 반향실에서 빠져나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어봐야 다음 발걸음을 어디로 내디뎌야 할지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것이 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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