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다방/ 권미강 지음/ 노마드북스 펴냄
눈으로만 보던 시를 귀로 들을 수 있다니. 권미강 시인의 시집 '소리다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학원에서 '시낭송의 공연예술화 방안'을 연구했던 시인은 시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었고 마침내 소리시집이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시집 한 켠에 인쇄된 QR코드를 찍으면 시인이 낭송한 시가 재생된다. 총 64편의 시 중 28편을 낭송으로 들을 수 있다.
시집 제목인 '소리다방'은 시인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전파사인 '미음사'를 일컫는 단어다. 한적한 마을을 정겨운 노래 가락으로 채우며 시장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미음사' 주인인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향수가 짙게 깔려 있다.
'소리다방'에는 총 64편의 시가 1~5부로 나눠져 실렸다. 시에는 충청도 작은 읍내 풍경과 소박하게 살았던 시장통 사람들의 일상이 트로트와 어울려 묘사돼 있다. 더불어 시인은 소리를 통한 청각뿐 아니라 시각과 미각, 촉각 등 감각을 시어를 통해 살려낸다. 그래서 시를 읽다 보면 영사기를 통해 빛바랜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기분을 자아낸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황정산은 해설에서 "권미강 시인의 많은 시들은 소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소리의 기억들을 추적하여 청각이 불러내는 감성을 소환하여 과거의 경험과 현실을 구체적 감각으로 재배치한다"며 이 책이 소리시집인 또 다른 이유를 밝혔다. 그의 분석대로 1부에 실린 시들은 시인이 유년의 기억들을 청각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먼지바람 휘돌아가는 충청도 한산면 삼거리/ 라디오통 소리 아름답게 들려주고 싶다던 아버지는/ 전파사 이름도 아름다운 소리 '미음사'로 짓고/ 가게 양쪽에 별표 전축 스피커로 소리공양 하신다./ 하루 종일 배호며 이미자며 은방울자매를 불러대는 미음사는/ 노랫소리 흘러나오는 시장통 사람들의 소리다방/ 부산스러운 오전 장사 끝내고/ 늦은 점심 뒤 미음사로 몰려드는 읍내 사람들/ 제재소 현순네 아버지가 '안개 낀 장충단공원'을 멋들어지게 따라 부르면/ 삼거리정육점 아저씨는 '돌아가는 삼각지'로 화답한다./ 저고리 색만큼 홍조 띤 엄마는/ '동백아가씨' 나오면 진열장 물건 챙기며 흥얼흥얼 콧소리 섞는다.' - 미음사 1 중에서
오랜 세월 가슴 속에 묻어둔 시를 지천명을 넘기고 나서야 꺼내 놓은 시인은 5부에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개인적인 경험과 인연을 통해 풀어놓기도 했다.
3·1운동과 관련된 '딜쿠샤 궁전', 평화의 소녀상을 그린 '평화로 돌아온 누이', 4·3항쟁의 아픔을 담은 '동백으로 우는 섬', 6·25전쟁과 분단이 준 개인적 비극 '간첩을 사랑한 여자', 세월호의 슬픔을 담은 '4월은 꽃들이 우리를 기억하는 달', 남북정상회담의 감동을 담아낸 '정상의 악수' 등은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우리의 길을 찾기 위한 표식이기도 하다.
시 낭송의 음악 작업은 영화 '워낭소리' 음악감독이자 작곡가 허훈 씨가 맡았다. 시인의 시를 읽고 작곡한 9편의 음악은 낭송과 맛깔스럽게 어우러져 시의 맛을 배가시킨다.
권미강 시인은 충남 서천군 한산면 출생으로 1989년 동인지 '시나라'에 '백마의 안개' 외 1편을 발표했으며 2011년 '유년의 장날'로 <시와 에세이> 신인상을 받았다. 칠곡군청과 구미시청,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대전문화재단 등에서 근무했으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불교방송 구성작가 등 언론사에서 일했다. 현재 여주시청 홍보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공저로 '예술밥 먹는 사람들'이 있다. 127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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