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자 대구시교육청 민원담당사무관
대구시교육청에는 월평균 250여 건의 민원이 접수 처리된다. 시설물의 이용 방법부터, 미세먼지 오염 대책과 같은 환경 문제까지 광범위하다.
민원에 관한 가장 상징적인 제도는 신문고라 할 수 있다. 신문고는 조선의 태종이 처음 시행했다. 그는 아버지인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많은 공을 세웠다. 하지만 태조는 공이 많은 한씨 부인의 아들들을 제쳐 두고 두 번째 부인인 강씨가 낳은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다.
이에 반발하여 이복동생인 세자와 정도전 등 수많은 공신들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태종은 재위 중에 야간 통행금지 시행 등을 통해 조선 사회를 엄격하게 통제하려 했다. 이러한 통제하에서도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등 민심은 흉흉했다.
태종은 민심을 수습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방편으로 신문고 제도를 시행했다. 1402년, 의금부의 당직청에 북을 달아놓고 백성들이 억울한 일이 있으면 북을 치도록 했다. 그러나 기대한 만큼 민원에 대한 처리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신문고를 울린 사람이 오히려 처벌받는 일도 생기게 되자 백성들에게 신문고는 점차 유명무실한 대상이 되고 말았다.
민원을 제기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상언과 격쟁이 있었다. 상언은 민원의 내용을 글로 적어 임금에게 고하는 것이고 격쟁은 징이나 꽹과리를 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상언보다 격쟁을 선호했다.
상언은 한문으로 작성해야 해서 문자에 익숙하지 못한 일반 백성들은 격쟁을 하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군역과 환곡 등의 제도 문란으로 일반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고 이에 비례해 상언과 격쟁은 그 빈도가 높아졌다.
격쟁과 상언은 정조 시대에 가장 활발했다. 정조는 백성들과 직접 소통하고 그들의 삶에 제일 요긴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그것을 정치에 녹여내고자 노력했다. 정조 임금 시절 처리한 민원이 3천여 건이 넘는다. 정조는 민의를 알고자 그 통로를 활짝 열었으며 백성들의 민원을 통치를 위한 빅데이터로 활용한 현명한 통치자였다.
요즈음 시민들은 교육행정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제공만 받는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권리 주장은 물론이고 아이디어를 내고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이러한 현상은 시민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터넷과 SNS의 발달에 힘입은 바 크다. 인터넷을 통해 행정기관에 쉽게 접근해 민원을 제기할 수 있으며 외국의 제도나 사례도 알아보기가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교육행정과 관련된 수많은 데이터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쌓이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에서는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민원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민원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교육행정에 대한 요구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면 이에 맞는 정책을 수립해 행정 낭비를 줄이고 시민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시민들이 직접 민원을 제기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인터넷 공간의 빅데이터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에 빅데이터가 신문고이며 상언이고 격쟁이 될 것이다. 처음으로 신문고를 매달았던 태종 임금은 이를 보고 과연 뭐라고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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