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원 1호 순천만국가정원, 순천만습지... 넓기도 넓은 겨울철 국보급 관광지
하회마을의 초가 버전인 낙안읍성, 202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예정
순천드라마세트장 달동네는 진짜 같은 가짜... 소셜미디어 바람 타고 포토존 입증
순천 가서 뭐 자랑하고 왔노, 물어쌌는데.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 말고, 벌교에서 힘 자랑 말라'는 말을 듣고 왔잖아. 그게 일제강점기부터 있던 말이라카데. 여수는 개항하면서 돈 있는 사람들이 몰리가 돈이 넘쳤고, 벌교는 의병 활동을 씨게 해가 일본 아덜한테 안 져가 그카더라 카이.
근데 순천에서 카는 인물 자랑이 미색 같은 게 아이라카데. 인재란다. 그쪽에 똘똘한 아덜이 전부 순천으로 모있다는기라. 90년대까지도 순천고등학교는 전국구였다 카더라.
야, 그런데 이번에 순천 가보이 자랑하지 말아야 될 거는 따로 있더만. 내가 국내는 억수로 댕기가 볼 만큼 봤다 캤디만, 그거를 뒤집는 기 또 나오는기라. 어딜 가든 고수가 있다 카이. 겸손해야 돼.

◆순천만국가정원
정파와 사파로 나뉘어 부수고 깨는 무협의 세계와 조금 달랐다. 남해안 관광지들은 관광객들이 내공을 알아봐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내공만큼 사람들이 모였다. 섬이 마구 뿌려진 남해의 절경을 감상하러 닿는 남해안 라인에는 거제, 통영, 고성, 사천, 남해 등이 있는데 오랜 기간 방주 역할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이 맡아왔다. 압도적 풍경으로 뱃멀미도 멈추게 하는 비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해안 라인도 겨울이면 내공 차가 드러나는데 최근 순천이 부상하고 있다. 순천만국가정원의 꽃밭, 갈대숲 등 인생샷 포토존 신공이 통한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광풍마저 탔다. 내공이 가득하지만 은인자중하는 고수가 중원에 널려있다는, 무협지에서나 보던 가르침의 문장을 순천에서 실감한다.

워낙에 넓다. 92만㎡, 대구교대 캠퍼스 15개 크기다. 광대한 규모에 오금이 저려온다. 뛰어다녀도 최소 1시간이겠구나 싶지만 눈이 지루하지 않다. 겨울인데 이렇다면 다른 계절엔 오죽하겠나. 둘러볼수록 '국가정원 1호'란 존칭에 이견을 내기 힘들다.
국가정원은 동문, 서문 두 개 문으로 출입구로 나뉜다. 동문으로 접근하는 편이 낫다.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호수정원이 동문에서 가깝다. 꽃길과 수목원으로 구성된 정원의 면적으로만 한정하면 2시간 정도로 소화할 수 있다.
관람차를 타면 메타세쿼이아길, 네덜란드정원, 중국정원, 도시숲 등 주요 공간을 30분 남짓으로 둘러볼 순 있다. 단지 본전을 뽑지 못할 뿐이다. 다음에 꼭 또 와야지 하면서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는 수순이다.

이 넓고 화려한 공간을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내공 부족을 실감하며 분수처럼 땀이 솟는 체질이 아니라면 뛰면서 둘러봐도 좋겠다 싶었는데 정말로 그런 사람들이 보인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온 이들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이들은 어디든 있다.
알고 보니 연간회원권이 있다. 스포츠경기도 아니고 연간회원권이라니 생소하다. 입장료를 보니 그럴 만했다. 순천시민은 1년 내도록 이용해도 1만원이었다. 외지인에겐 입장료가 회당 8천원이지만 열흘 남은 올해는 '순천 방문의 해'라고 7천원이다. 외지인은 연간회원권이 3만원이다. 대구에서 순천까지 분기별로 가지 않는 이상 본전을 뽑을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겨울철 여행에는 해가 짧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애초에 마음 단단히 먹고, 점심도 든든히 먹고 국가정원을 둘러본 뒤 오후 4시가 되기 전 순천만습지로 향하는 게 좋다. 순천만습지의 황금낙조가 벌이는 쇼는 그 즈음 시작되기 때문이다.

◆순천만습지
꽃밭과 수목원이 있는 국가정원에서 순천만습지까지는 7km 거리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편이 좋다. 굳이 걷겠다면 말리진 않겠으나 풍경이 좋지 않다. 남쪽이라 아무래도 덜 춥긴 하지만 무딘 겨울바람도 칼바람이다.
자동차 대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스카이큐브다. 왕복요금 8천원으로 순천문학관까지 갈 수 있다. 물론 순천문학관에서 갈대밭까지는 1.4km 떨어져 있다. 좋은 풍경에는 장딴지와 허벅지의 유기적 메커니즘이 필수다.
순천도 걸출한 문인들을 배출한 고장이다. '무진기행'의 김승옥을 대표로 삼는다. KBS순천방송국이 매년 김승옥문학상을 제정, 시상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진'을 다녀온 주인공 윤회중의 이야기 속 배경은 순천이다.
김승옥 작가가 밝힌 바 있다. 김훈 작가가 한국일보 기자 시절 '동행하기를 겸연쩍어 하는' 김승옥 작가를 앞세워 순천에 다녀왔다. 지금은 절판된 '김훈·박래부의 문학기행'에서 당시 김훈 기자는 "작가는 그곳이 전남 순천과 순천만에 연한 대대포 앞바다와 그 갯벌이라고 일러준다"고 썼다.
아동문학가 정채봉과 무진기행의 김승옥을 소재로 한 순천문학관에서도, 순천만습지 갈대숲으로 들어서는 입구의 다리 이름인 '무진교'에서도 순천이 무진임을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순천만습지의 진풍경은 단연코 갈대숲이다. 황금색 갈대다. 12월 중순임에도 솜털이 뽀송뽀송한 갈대가 낙조를 맞아 윤슬처럼 반짝인다. 눈에 들어온 광경은 머리에 저장되기 전에 혀끝으로 퍼져나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입장은 5시 이전까지 가능하지만 4시를 넘길 즈음에 오는 게 좋다. 겨울에는 그때부터 해가 떨어진다. 순천만습지는 단 한 번도 한국관광 100선에서 빠진 적이 없다. 갈대가 피는 가을이 절정이라는데 그 말대로라면 아직 순천에는 겨울에 오지 않았다.
◆순천드라마세트장

반복해 익힌 학습, 체득에 가까웠다. 드라마세트장이 거기서 거기라는 건 체득에 가까운 선입견이었다. 전국 드라마세트장이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체득의 경지에 이른 눈은 얼마나 엉망으로 만들었는지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 동네는 분위기가 달랐다.
맙소사, 달동네를 만들어놨는데 현장감이 생생하다. 원래 있던 달동네를 철거하지 않고 활용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쓰다 남은 연탄마저 뭉개져 있으니. 언덕배기에 있는 교회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예배 용도에 충실했을 공간으로 보였다. 찬찬히 살피자 화장실 공간이 안 보였다. 일부러 만들어낸 게 맞았다. 실제로 사람들이 살았던 부산 감천마을의 알록달록한 지붕이 컬러라면 이곳은 흑백이었다. 색감이 없어 외려 현실감이 컸다.
2006년 개장한 드라마세트장이다. 이전에는 군부대였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 촬영 용도였다. 1970년대 서울 봉천동을 흉내 낸 것이라 했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배경이 순천 읍내다 보니 세트장이 필요했고 이왕 만드는 거 제대로 만들어보자며 만든 건데 스케일이 컸다. 63억 원이 들었다. 언제 적 '사랑과 야망'이냐면 2006년 버전이다. 이덕화 주연의 1987년 버전에는 달동네 분위기를 낼 필요가 없었다. 그 당시 달동네는 흔하디 흔한 우리의 현실이었다.
돈이 들어간 만큼의 골치를 앓았다. 적자에 허덕였던 것이다. 옛날 교복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2014년부터 한 게 전환점이 됐다. 사실 적자 수렁에서 건져낸 일등공신이 인스타그램이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소셜미디어에서 포토존으로 눈길을 끈 덕분이었다. 레트로 열풍도 도왔다. 특히 영화 허삼관에 등장한 실개천과 나무 다리를 배경으로 가장 많이 찍는다. 입장료 2천원을 받아도 꾸역꾸역 관광객이 밀려든다.

◆낙안읍성
옛날 모습처럼 만든 게 아니라 예전의 것 그대로다. 하회마을의 초가 버전이다. 물 돌아나가는 길이 없다는 점도 더한다. 조선시대로 순간 이동이다. 1397년(조선 태조 6년)에 왜구의 잦은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 토성으로 쌓았다. 세종 때 석성으로 개축했고 병자호란의 영웅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재직하던 1626년에 석성을 중수했다고 한다.
마을을 감아 도는 성벽 위에 올라 본다. 옛 풍경이 훨씬 도드라진다. 아기자기하면서도 깨끗한 마을을 계속 내려다보며 걸으니 1.4km 읍성 둘레를 금세 한 바퀴 돈다. 누런 초가들이 처마를 맞대고 있다. 색감이 좋다. 초록의 대나무숲 빈기등, 눈을 의심하게 되는 귤나무숲, 시간은 한겨울로 가고 있지만 눈 대신 새하얀 목화가 터져 나온 목화밭, 붉은 알갱이 산수유, 선연하게 붉은 동백, 주황빛 홍시를 쪼아 먹는 까치까지 각각의 색깔이 선명하다. 북쪽 금전산 암릉이 가까이 보이니 동양화 한 폭이 여기다. 카메라를 갖다 대기만 하면 누가 찍어도 작품사진이다.

현실과 과거의 단락은 성곽돌이 구분지어 준다. 초가에 사람이 산다. 마당은 잘 정돈돼 있고 깨끗하다. 자연풍광 자체가 아름답다. 202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올해는 한국을 빛낸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됐다. 뭐든 당연해 보인다. 낙안읍성도 숱한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장이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광해', 드라마 '대장금' 등이 이곳에서 나왔다.

전남 보성 벌교에 가깝다. 벌교라니. 태백산맥과 꼬막이 연상되면서 외서댁이 연결된다. 그러고 보니 외서면이 순천에 있다. 외서면은 원래 낙안군에 있었다고 한다. 이름이 낙안읍성인 이유다. 현재 낙안군이라는 이름은 없다. 일제가 행정구역을 폭파해버렸다. 극렬한 의병활동을 감당하지 못해서였다.

◆별미의 시간
식재료가 많아 남도정식으로 유명한 순천에는 '탕탕탕'이라는 별칭의 산낙지비빔밥도 별미로 친다. 산낙지 한 접시와 바지락국이 나온다. 밥에 비비기 전 그냥 숟가락으로 떠 먹어본다. 술을 부른다. 바지락국을 떠먹으니 해장용이다. 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적잖게 들린다. 1인분에 2만원이다. 웬만한 한정식 가격이다. 기본이 2인분이다.
'탕탕탕'이란 이름은 손님들이 붙여줬다. 도마 두드리는 소리에서 왔다. 전국 첫 산낙지비빔밥이라 자부한다. 메뉴를 내놓은 건 20년째라 한다. 맛집이 몰려있는 순천시청 맞은 편에 있다. 식당 이름은 사장의 장인과 장모의 고향을 따 붙였다고 한다. 정작 사장은 의성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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