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인문학과 왜관

입력 2019-12-10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강은/ 과거에 이어져 있으면서/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강은/ 오늘을 살면서 미래를 산다/…/ 강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무상 속의 영원을 보여준다'. 구상 시인은 왜관 낙동강변 관수재(觀水齋)에서 '강' 연작시를 썼다. 시인에게 강은 삶과 문학을 일깨운 회심(回心)의 터전이었다. 구도의 방편이자 사랑의 궁극이었다.

1970, 80년대 왜관의 어느 이름난 음식점에 욕쟁이 할머니가 있었다. 식당 골목에 들어서면 사회적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할머니의 걸쭉한 육담부터 한 사발 얻어먹어야 했다. 할머니도 낙동강변에서 자란 그저 순박한 소녀였다. 전쟁의 격랑과 삶의 굴곡이 소녀를 억센 여인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할머니의 욕은 여울져 흐르는 강물처럼, 농익은 판소리의 사설처럼 정감나는 넋두리이기도 했다.

왜관(倭館)은 그런 곳이다. 낙동강 물류 수송의 길목인 나루터가 있었고, 통상·교역을 위한 왜인들의 거주 공간이 있었다. 경부선 철도 개통과 함께 왜관역이 생기면서 왜관이란 지명이 확정되었다. 군청이 옮겨오면서 명실공히 칠곡의 중심지가 되었다. 왜관철교의 내력에는 낙동강 방어선의 참혹한 상흔이 배어 있다. 가실성당과 베네딕도 수도원에는 사랑과 평화를 희구하는 염원이 스며 있다.

매원마을은 유교적 이상향을 꿈꾸던 선비들의 세거지였다. 왜관 낙동강변에는 전쟁의 비극을 되돌아보고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호국평화기념관이 있고, 해마다 낙동강세계평화문화대축전이 열린다. 칠곡군이 문화교육 선도도시 부문에서 '한국의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대상'을 7년 연속 수상했다. '인문학도시 칠곡'의 입지와 명성을 재확인한 것이다.

평생학습대학을 운영하고 평생학습인문학축제를 열며, 글 모르던 할머니들이 시집을 내고 '칠곡 가시나들'이란 영화까지 만들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일은 인문학마을사업이 골골마다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도시 칠곡'은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다. 또 한 해의 석양이 드리워진 낙동강은 말한다. 그것은 왜관 사람들의 곡진한 애환을 품고 숱한 아리랑 고개를 넘어온 '강의 노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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