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암호화폐산업의 지각 변동과 한국의 늑장 대응

입력 2019-12-03 15:57:32 수정 2019-12-03 19:42:22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페이스북 등 암호화폐 발행 계획
지구촌 50억 인구가 사용할 전망
한국은 막무가내식 규제만 지속
거래소 해외 떠나고 국부도 유출

암호화폐산업에 엄청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러시아의 텔레그램과 미국의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발행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중국인민은행과 유럽중앙은행도 암호화폐를 발행할 계획이라는 소식이다. 3억 명 이상의 이용자가 있는 네트워크인 텔레그램이 암호화폐 그램(Gram)을 발행하고 20억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리브라(Libra)를 발행할 계획이다.

리브라는 암호화폐 가격의 변화가 없는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을 표방하고 페이스북 내 가상 지갑과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전 세계 어디서나 돈을 보내고 결제할 수 있도록 해 현금이나 신용카드도 필요 없는 시대, 국경을 넘어 해외에 송금할 때도 환전·송금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관장하게 될 '리브라협회'가 스위스 제네바에 별도의 비영리협회로 설립될 계획이다. 리브라협회에 가입한 글로벌 금융회사들을 고려하면 27억 명이 사용하게 될 전망이다.

중앙은행의 암호화폐 발행 계획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중국인민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발행할 계획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중국 인구 17억 명에다 중국과 거래하는 주변국을 고려하면 그 파급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최근에는 19개 회원국에 인구 3억5천만 명 유로존의 유럽중앙은행(ECB)도 2021년 말까지 유럽 전역 실시간 결제에 사용되는 것을 목표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발행할 계획인 것으로 보도됐다.

현재 세계 인구는 77억 명이다. 이 중 금융계정이 없는 인구가 27억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금융 접근성이 있는 인구가 50억 명이라는 얘기다.

앞으로 리브라 사용자 27억 명, 중국 인민은행 디지털화폐 사용자 17억 명, 유럽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사용자 3억5천만 명, 텔레그램의 그램 사용자 3억 명을 합하면 50억5천만 명이다. 이 정도 되면 글로벌 기축통화 체제에도 엄청난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달러 위상 저하를 우려한 미국 정부와 유로화 위상 저하를 우려한 독일 정부가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기술 혁신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재 세계 경제는 글로벌 불황기에 접어들어 미국이 연이어 금리를 인하하면서 달러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고, 국제 금융위기가 재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 경우 안전자산으로 암호화폐가 주목을 받게 되면서 앞으로 글로벌 통용이 되는 암호화폐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외환보유액을 많이 보유하는 효과를 가지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도 뒤지지 않기 위해 MUFG금융그룹이 MUFG코인을, 미즈호은행이 J코인을, SBI 홀딩스가 S코인을 발행해 내년 도쿄 올림픽 때에는 대대적으로 사용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에서는 JP모건이 JPM Coin 발행을 발표했다. 이러한 대형 글로벌 회사들의 암호화폐 발행에 힘입어 1비트코인당 4천달러 수준까지 하락했던 비트코인 가격이 다시 반등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추세를 외면한 채 완전히 암호화폐의 외딴섬이 되고 있다. 암호화폐에 대한 정의도 내리지 못하고 암호화폐공개(ICO)는 금지하고, 거래소는 통신판매업자로 간주해 거래를 유사수신행위로 규제하는 등 막무가내식 규제가 지속되고 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해야 할 건전한 규제마저도 하지 않고 있어 최근 590억원 상당의 해킹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에서는 암호화폐거래소 등록제를 도입하고 투자자의 암호화폐가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지갑인 콜드월렛에 보관하도록 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이런 규정도 없어 편의성이나 비용만 고려해 투자자의 암호화폐가 인터넷에 연결된 핫월렛에 보관돼 오다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정작 산업발전에 건전한 규제는 외면하고 무작정 전방위적인 규제로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한국을 떠나 양질의 일자리와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암호화폐산업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는 규칙과 제도,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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