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평의 귀촌한담] 행복한 숭산보건 진료소

입력 2019-11-27 18:00:00

가야명상연구원장·대구대학교 명예교수
가야명상연구원장·대구대학교 명예교수

지독한 감기에 걸린 할머니가 어렵사리 부탁해서 들른 곳은 가야면 숭산보건진료소였다. 시골 오지에는 주민 편의를 위해 설치된 보건진료소라는 것이 있다. 면 단위에는 보건지소가 있지만 보건진료소는 그보다 더 열악한 이(里) 단위에 설치된 주민친화적 일차 건강진료소이다. 귀촌해서 살다 보니 보건진료소야말로 오지 주민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의료기관이라는 것을 실감케 되었다.

공기 좋은 시골에는 아픈 사람들이 더 많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피할 수 없는 농사 노동과 가난한 살림살이 때문이다. 아파도 병원에 가자고 자식에게 선뜻 연락할 용기도 없으니 그냥 참는다. 진료소는 그런 주민들이 손쉽게 찾게 만든 특별병원인 셈이다. 문제는 진료소의 문턱이 높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진료소장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지는 국면이다. 65세 이상은 자부담이 없고 그 이하는 900원만 부담하기 때문에 주민들로서는 자주 진찰을 받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진료소가 북적거리는 이유다. 소장 혼자서 많은 주민을 상대해야 하니 근무 강도가 강할 수밖에 없다. 주민들은 민감한 눈으로 진료소장의 눈치를 보고, 진료소장은 적당한 선에서 주민 접촉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봉사 정신과 나이팅게일 정신이 요청된다.

한편으론 주민들의 의료 과소비가 지양돼야 할 국면이기도 하다. 친절한 진료소장 소문은 금세 동네에 자자해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숭산진료소에는 나이팅게일 정신이 넘치는 진료소장님 덕분에 환자가 넘쳐난다. 먼 이웃 마을에서 차량으로 소복하게 오는 경우도 있다. 문턱이 낮다 보니 나도 신세를 진다. 벌, 지네, 깔따구에 쏘이거나 몸이 불편하신 분과 같이 갈 때도 있다. 들른 김에 혈압, 당뇨 체크도 해본다. 진료 도중에 주민의 인정 가득한 봉지도 보게 되지만, 들어서자마자 주사 한 대부터 놔달라고 강짜부리는 사람도 여럿 봤다.

시골에 살다 보니 농사는 각종 사고에 취약한 생계 활동임을 알게 되었다. 농민 중에서도 위험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할머니들이다. 오랜 밭농사로 인하여 손목, 허리, 무릎, 근육 등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이고 신경질환, 우울증, 소화 불량, 감기에 시달린다.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이유는 교통 불편 때문이다. 숭산진료소장님은 마을 방문 출장 진료도 해주신다. 그 마음이 진정 행복해 보이기에 주민들마저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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