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양해각서 깬 상주시 한국타이어에 씁쓸한 승소

입력 2019-10-31 16:33:37 수정 2019-10-31 19:17:08

경북도·상주시와 투자 양해각서 체결하고도 사업 무산…소송서도 패소 왜?
양해각서 체결해도 '법적 구속력' 명기 없으면 한쪽이 일방적 사업 중단해도 무효력

2013년 9월 한국타이어를 유치하고 행정·재정적 지원을 약속한 상주시가 이듬해 시장이 바뀐 뒤 착공까지 한 사업에 대해 제동을 걸자 한국타이어 산업단지 유치를 찬성하는 상주시민들이 2014년 9월 경북도청을 방문해 중재를 요구했다. 고도현 기자
2013년 9월 한국타이어를 유치하고 행정·재정적 지원을 약속한 상주시가 이듬해 시장이 바뀐 뒤 착공까지 한 사업에 대해 제동을 걸자 한국타이어 산업단지 유치를 찬성하는 상주시민들이 2014년 9월 경북도청을 방문해 중재를 요구했다. 고도현 기자

5년 넘게 이어온 경북 상주시와 한국타이어의 소송전이 상주시의 최종 승소로 끝이 났다.

지난 2013년 9월 한국타이어는 2천500억원 규모의 국내 최대 주행시험장과 산업단지를 경북 상주에 만들기 위해 경상북도·상주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런데 행정·재정적 지원을 약속한 상주시가 이듬해 시장이 바뀐 뒤 일부 주민의 반대를 이유로 착공까지 한 사업에 대해 제동을 걸자 한국타이어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상주시가 한국타이어에 13억여원을 배상하라는 판결(매일신문 2015년 12월 12일 자 등)이 났는데, 2심에서는 상주시가 한 푼도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매일신문 2016년 11월 12일 자 6면)로 결과가 뒤집혔다.

31일 열린 대법원의 최종 상고심도 2심과 같았다. 대법원 2부는 31일 한국타이어가 상고한 손해배상 청구심에서 기각 판결하고 항소심을 유지했다. 상주시가 한국타이어에 배상하지 않아도 되는 100% 승소 판결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상주시가 한국타이어와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유치를 독려해 놓고, 이미 진행된 사업을 주민들의 반대를 이유로 중단시킨 것은 신의성실의 위반이 인정된다'며 한국타이어가 요구한 배상금 21억7천만원의 60%인 13억200만원의 배상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항소심은 '법적 구속력을 명기하지 않은 양해각서는 상호 간에 확고한 신뢰를 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자치단체와 기업이 투자유치를 위한 상호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하더라도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는 문항'을 별도로 삽입하지 않으면 향후 한쪽의 일방적 비협조로 사업이 중단되더라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애초 상주시와 한국타이어 간 양해각서엔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는 문구가 들어갔으나 최종 체결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상주시 측이 '도지사와 시장이 사인했는데 뭘 못 믿나. 그래서야 사업을 어떻게 하느냐'며 삭제를 요구해 이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양해각서의 신의성실 의무가 없다고 본 이번 판결은 최근 들어 급증하는 자치단체의 기업 유치 양해각서에 대한 불신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수년간의 소송이 상주시의 승소로 끝이 났지만 적잖은 시민은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소송 결과와 관계 없이 한국타이어 산업단지 유치가 무산된 데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상주시의 기업 유치 신뢰도가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감도 나오고 있다.

한 시민은 "비록 상주시가 승소해 13억원을 건지게 됐지만 자랑할 일은 못 된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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