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는 암표의 계절?" '피케팅'에 암표 근절 요원

입력 2019-10-19 15:42:03 수정 2019-10-20 11:35:08

1995년 삼성 라이온즈 홈구장
1995년 삼성 라이온즈 홈구장 '대구시민야구장'의 암표상 및 암표 거래 장면. 매일신문DB

'암표'의 계절이 돌아왔다.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기간인 것.

지난 10월 17일 저녁 키움 히어로즈가 SK 와이번스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 두산 베어스의 상대가 되자마자, 수많은 야구팬들이 한국시리즈 일정과 예매 정보를 검색했다. 관련 검색어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차지했을 정도다.

그러면서 야구팬들은 한국시리즈 입장권 '피켓팅'(피가 튀는 전쟁 같은 티켓팅)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암표상들이 암표로 팔기 위해 입장권 티켓팅에 함께 뛰어들기 때문이다. 매년 가을 한국시리즈 때면 불거지는 문제다.

관객만큼 암표상도 들끓었던 과거 극장 앞. 자료사진. 매일신문DB
관객만큼 암표상도 들끓었던 과거 극장 앞. 자료사진. 매일신문DB

▶암표(暗票)는 '불법으로 몰래 사고파는 각종 탑승권, 입장권 따위의 표'를 가리킨다.

이 정의에서 탑승권이 입장권보다 먼저 언급되는 이유가 발견된다. 우리나라 암표의 원조 중 하나가 탑승권인 기차표인 것.

대중교통 인프라가 변변찮던 시기, 그나마 기차가 버스·항공에 앞서 도입된 장거리 교통 수단이었고, 초기에는 당연히 공급이 수요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성행한 게 암표였다. 1950년대 신문 기사를 살펴보면 기차에서 불거지는 심각한 문제로 석탄 도난, 무임승차와 함께 암표 매매가 꼽혔을 정도다.

이후 기차에 이어 버스 인프라도 확충되면서, 시외버스터미널 역시 명절을 앞두고는 암표상이 들끓는 장소가 됐다.

또한 극장표도 암표가 많았다. 지금이야 영화 티켓은 쉽게 구할 수 있고 공연 티켓이 주요 암표 거래 대상이지만, 그땐 지금처럼 공연 문화가 풍족하지 못해 영화가 거의 유일한 관극의 대상이었다. 특히 설과 추석 명절에는 극장은 한정돼 있는데 영화를 보려는 인파는 넘쳐서 암표가 번졌다. 1957년 12월 28일 자 경향신문 '이 해에 생긴 새 직업들' 기사에서는 '극장표암매업'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에 극장 사장들이 정부에 암표상 단속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극장 앞에서 암표를 파는 청소년이 많았다. 1961년 12월에는 서울시경이 그달 5일 밤에만 암표상을 비롯해 물품 강매, 구걸을 해 온 청소년 및 부녀자 199명을 적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아울러 암표를 파는 조직폭력배들을 검거했다는 소식도 곧잘 전해졌다.

버스 회수권도 암매의 대상이었다. 이 역시 일명 표암매단이 조직적으로, 또 대량으로 암매했다. 봄이나 가을 행락철에는 공원 등 주요 명소 입장권이 암매되기도 했다.

암표만큼 위조표도 성행했다. 인기 스포츠 경기나 박람회 등 대규모 행사가 열리면 그랬다. 전국체전, 고교야구 및 축구 경기 등 아마추어 스포츠 행사나 경기도, 요즘과 달리 큰 인기를 얻은 까닭에 암표 매매가 꽤 이뤄졌다. 1980년대 들어 프로야구와 축구 등 프로 스포츠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까지는, 국민들이 관람할만한 스포츠 경기가 적었기 때문에, 고교야구 붐 같은 게 있었고, 이는 암표상의 활개도 야기한 것이다.

2012년 삼성 라이온즈 홈구장
2012년 삼성 라이온즈 홈구장 '대구시민야구장'의 암표상 및 암표 거래 장면. 매일신문DB

▶시대가 많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비슷한 모습이다.

우선 원조격 기차표는 여전히 명절이면 암표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만 과거에는 기차역 앞 같은 오프라인이 거래 장소였던 게, 요즘은 온라인 중고 거래 사이트 등으로 바뀌었다.

극장표의 경우 극장 인프라 자체가 풍족해지면서, 또한 멀티플렉스 위주로 영화관 업계가 재편되면서, 암표는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대신 늘어난 게 각종 공연 암표이다. 특히 1990년대부터 아이돌 시대가 시작되면서, 인기 아이돌 그룹 공연 암표 거래는 사회 문제로까지 비춰지고 있다.

지난 9월 김수민 바른미래당 국회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받은 암표 거래 현황 자료에 따르면, BTS(방탄소년단) 콘서트 티켓의 경우 정가 11만원의 63배인 700만원에 실제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정가와 암표거래가, 즉 '시세'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이들 숫자를 서로 비교해 흥행 예상 잣대로 활용하기도 한다. 가령 한국시리즈 암표 가격을 두고, 지난해와 올해를 비교하며 그만큼 흥행이 더 될 것이다 또는 덜 될 것이다 등을 감별한다는 것.

그러면서 암표상들의 식견도 주목받은 바 있다. 아무래도 여러 행사 가운데 어떤 행사의 암표를 확보할 지 미리 결정해야 하는데, 흥행에 성공할만한 행사를 고르는, 특히 극장 암표의 경우 어떤 영화가 인기를 얻을 지 예측하는 안목이 좋더라는 관계자들의 전언이 1997년 2월 22일 자 매일경제 '암표장사는 흥행감별 척도' 기사에 실린 바 있다.

위조표 역시 아무리 각종 인증 시스템이 발달했다지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역시 공연 및 스포츠계에서 관련 사건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위조표 거래는 표 구하기 과열 양상에 암표 공급마저 수요보다 적을 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KBO 리세일 앱 화면. KBO
'암표 OUT! 함께하는 클린 베이스볼' 캠페인. KBO

▶아무튼 당장 야구팬들이 마주한 상황은, 한국시리즈 암표이다. 18일 진행된 한국시리즈 1·2·6·7차전 티켓 예매의 경우 예매 사이트(인터파크티켓)가 서버 다운이 될 정도로 과도한 경쟁 속에 이뤄졌고, 이에 야구팬들은 암표상들의 티켓 예매가 한몫했다고 본다.

이어 인터넷 및 현장에서는 표를 구하지 못한 야구팬들과 암표상들의 접선도 곧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KBO는 암표 근절을 위한 '암표 OUT! 함께하는 클린 베이스볼'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 캠페인의 여러 이벤트 가운데 '온라인 신고하기 이벤트'가 있다. 실제 암표 매매 사례를 신고하면, 추첨을 통해 플레이오프 2차전 티켓을 2명에게, 또 한국시리즈 1차전 티켓을 2명에게, 1인 2매씩 입장권을 증정한다.

그런데 결코 작지 않은 시장이 형성돼 있는 암표 근절을 막자면서, 그에 비하면 너무 부족한 수량을 경품으로 걸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아울러 KBO는 티켓 재판매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KBO 리세일 앱도 운영한다. 물론 암표상들이 확보한 입장권이 이곳을 통해 거래될 확률은 희박하다.

KBO 리세일 앱 화면. 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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