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생활사 스토리텔링] 시장 돌다리 놓은 이항주

입력 2019-10-03 06:30:00

성주읍에는 돌다리를 놓은 이항주를 기려 이름을 새긴 바위가 있는데, 지금은 이름이 가려져 있다. 박노익 선임기자
성주읍에는 돌다리를 놓은 이항주를 기려 이름을 새긴 바위가 있는데, 지금은 이름이 가려져 있다. 박노익 선임기자
성주읍에는 돌다리를 놓은 이항주를 기려 이름을 새긴 바위가 있는데, 지금은 이름이 가려져 있다. 박노익 선임기자
성주읍에는 돌다리를 놓은 이항주를 기려 이름을 새긴 바위가 있는데, 지금은 이름이 가려져 있다. 박노익 선임기자
성주읍에는 돌다리를 놓은 이항주를 기려 이름을 새긴 바위가 있는데, 이름이 가려지기 전 모습. 성주문화원 제공
성주읍에는 돌다리를 놓은 이항주를 기려 이름을 새긴 바위가 있는데, 이름이 가려지기 전 모습. 성주문화원 제공

성주는 뭍길, 물길 교통의 요충지였다. 물산도 풍부해 거래, 이동이 많아 장터 출입 발길이 잦았다. 성주시장은 경산리 성주여중·고 뒷문 언덕 아래 마을 큰배리(東也里)에서 시장 입구로 흐르는 개울 위 나무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이를 보다 안전하고 든든한 돌다리로 바꿨으니 성밖마을 사람 이항주(李恒柱)이다. 나라 잃은 1910년, 김창숙 등이 성명(星明)학교를 세울 때도 힘을 보탠 그가 모두 힘든 1921년경, 사재로 목교(木橋)를 석교(石橋)로 바꾸니 그의 호(죽포)를 따 죽포교(竹圃橋)라 부르기도 했다.

폭 5m 길이 15m 돌다리의 증언(여석상) 외, 돌다리 존재 기록도 전하나 1980년대 중반까지 멀쩡하던 다리의 사진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그를 기린 이름 세글자만 바위에 남았다. 개울을 덮고 길을 넓혀 이젠 없어진 성주시장 들머리 돌다리로 주변 이름도 돌다리걸(돌다리거리)이 됐다. 아파트 공사로 그의 옛집도 사라지고 사재 털어 가난한 이웃 혼사도 주선한 그 자취는 이제 돌에 가려져 100년 세월 뒤로 숨게 됐다. 정인열 기자

성주읍에는 돌다리를 놓은 이항주를 기려 이름을 새긴 바위가 있는데, 이름이 가려지기 전 모습. 성주문화원 제공
성주읍에는 돌다리를 놓은 이항주를 기려 이름을 새긴 바위가 있는데, 이름이 가려지기 전 모습. 성주문화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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